신석정 시인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우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뚝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田園을 방문하는 가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출처 : 시집,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미래사(1991)

▲프랑스의 사상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불꽃의 몽상가는 모두 잠재적인 시인이다”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초의 “불꽃에 대한 명상은 삶을 높이며 일상적인 질료의 모든 쇠퇴에도 불구하고 삶을 넘어 삶을 더욱 연장시키는 일종의 초(超)생명적인 비약을 발견한다”('촛불의 미학')고 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시인은 그러한 촛불을 켜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얘기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이 시의 첫 구절인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녁해’로 대표되는 자연의 빛과 ‘촛불’로 대변되는 인공의 빛 사이에서 시인은 ‘아직’ 남아있는 자연의 빛에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 시가 쓰여진 1933년 조국의 영토에 아직 밤이 오지 않았듯이 그 운명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그는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과 '어린 양들', 그리고 '어머니의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를 내세워 그것을 증명하며 ‘어머니’를 설득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모국이며, ‘저녁 해’와 ‘늙은 산’ ‘새새끼들’과 ‘어린 양들’과 ‘애기’는 희망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한 전원시를 넘어 어머니로 대표되는 모국에 전하는 예언적 메시지로도 충분히 읽힌다. 하지만 온갖 빛공해에 시달리는 지금의 우리는 어쩌면 이제 적극적으로 바슐라르의 촛불을 켜야 할 때가 아닐까. 창조적 몽상을 통해 신석정의 전원을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신석정(辛夕汀)
△1907년 전북 부안 출생. 1974년 永眠
△부안공립보통학교 졸업, 향리에서 한문수학,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 연구
△1931년 '시문학'지에 '선물' 발표로 등단, 이후 시문학 동인 참여.
△1945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 부안중학교 교사 역임
△1965년 전주시 문화장, 1968년 한국문학상, 1972년 문화포상, 1973년 한국예술문학상 수상.

△시집 : '촛불' '슬픈 목가(牧歌)' '빙하(氷河)' '산의 서곡(序曲)' '대바람 소리'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