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독일 비텐베르크 교수인 34세의 젊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95개에 달하는 반박문을 대학 정문에 내건 것이 1517년 10월 31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0년 전의 일이다. 정교일치의 중세 암흑시대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념을 나타냈으니, 그 용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고 귀하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16세기 초 베드로 성당 건축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자 '구원용' 면죄부를 판매했는데, 루터는 교황은 죄를 사할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자보를 대학의 벽에 붙였다. 루터의 저 유명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말씀(sola scriptura)’의 3가지 주장은, 그의 창조적 작품이라기보다는 평소부터 근본적인 문제와 씨름하다 던진 기본적 질문의 답을 성경으로부터 도출해낸 것이다. 인간의 구원에 대해, 성경은 면죄부 구입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고(오직 믿음), 구원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얻으며(오직 은혜), 그렇기에 교황의 말과 권위가 아닌 성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오직 말씀).

■ 타락한 종교에 펜과 목숨으로 맞서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에게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시인하면 처벌을 면해주겠다고 했지만, 루터는 자신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사제 앞에서 교황의 칙령을 불태웠다. 이후 루터는 파문으로 인해 생명의 위험을 겪게 되지만 작센의 군주 프레데릭의 도움을 받아 발트 부르크 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루터는 가장 힘들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그곳에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의 번역 성경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덕분에 독일 전역을 넘어 전 유럽에 보급됐고 종교개혁의 확산에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로마 가톨릭에 대한 비판은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존 위클리프는 이미 14세기에 교회를 말씀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을 비판하면서 말씀이 교회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프라하 대학의 얀 후스도 성서가 믿음의 유일한 권위가 돼야 한다고 했고, 가톨릭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 이들의 사상과 주장이 루터에게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루터의 종교개혁이 필요했다고 보지만 그것이 전 가톨릭에 대한 부정이나 폄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훌륭한 교부들과 성인들의 피로 그 기초가 세워졌고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느낀 것이지만 유태교는 신약을 부정하기에, 예수의 많은 흔적은 가톨릭의 정성과 관리가 있었기에 보존될 수 있었다.

■ 탈법횡행 한국교회 ‘제2 루터’ 절실

인류는 각 시대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 왔는데, 시대를 연 사람은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였다. 만일 인류가 다수의 생각에 만족하고 살아왔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루터의 양심이 칠흑 같던 중세를 찢었고, 그의 신념은 근대를 밝힌 횃불이 됐다. 그렇기에 타락한 종교에 대해 펜과 목숨으로 맞선 루터가 길이 기억되는 것이다.

지금의 개신교는 가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트(protest)에서 시작되었는데, 개신교에 대한 프로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리할 수 없는 단어인데,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운다고 비아냥거려도 개신교의 잦은 다툼 덕분에 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다. 금년 3월, ‘서울의 한 초대형 M 교회가 합병을 결정했다'는 일간지 보도는 종교개혁 정신의 계승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모으고 있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M교회가 소속된 예장(통합)총회가 2015년 법으로 교회세습을 금지하고 있으니, 교회 간 합병이라는 다른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섬기는 M교회와 M교회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아들의 새노래 M교회의 합병이다. 합병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세습이라는 것을 다 안다. 이러한 것을 탈법이라고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교회가 마치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된 것 같아 몸과 마음이 매우 무겁다. 예수께서 자신과 다른 길을 걷는 일부 교회에 대해 ‘어디로 가고 있는 가’ 물을 것만 같다. 둘째 루터가 개신교 및 한국 교회에 절실하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