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1467년 세조는 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구치관(具致寬) 등 원로대신을 승정원으로 불러들인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빌미로 자신을 옥좌에 앉히는 데 혁혁한 공적을 세운 이들 훈구대신을 내치고 서른도 안 된 이준(李浚)·남이(南怡) 등으로 조정을 바꾸며 파격적인 세대교체를 한 게 얼마 전이었다.

이유인즉슨 조선의 최대 외교 상대인 명나라 사신이 마침 도착했는데 자신은 와병중이고 영의정 이준을 비롯한 '젊은 내각'은 경험이 부족해 승정원에서 이들 사신을 접대하는데 실수가 있을까 걱정돼서였다.

이렇게 시작된 원상(院相)제도는 그 뒤 임금인 예종과 성종이 잇따라 어린 나이에 즉위함에 따라 더욱 확대돼 1476년(성종 7년)까지 9년간 존속한다.

성종대 이후에는 국왕의 즉위 때마다 설치·운영돼 집권대신들이 대소사를 처리하며 신왕의 안정적인 국정수행을 이끌기도 했지만 훈구세력의 집권통로로 활용돼 신진 사림세력과의 갈등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지난주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이재용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로 매해 연말이면 상례적으로 진행되던 인사가 늦춰지면서 안팎으로 분위기 쇄신의 필요성이 높아지던 차였다.

사상 최고의 실적을 발표했던 지난달 13일 권오현 부회장(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같이 트로이카 체제를 이끌던 윤부근(소비자가전 부문장)·신종균 부회장(IT·모바일 부문장)도 동반사퇴하며 대대적인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내고 있는 반도체 부문을 이끈 권 부회장의 공로가 큰 데 사퇴하는 모양새가 영 어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삼성은 실무 경영진은 평균 연령 55.9세로 낮추면서 기존 퇴임 경영진은 고문으로 위촉해 퇴직 관리를 했던 과거와 달리 회장과 부회장으로 승진·예우하면서 현 경영진에 대한 자문 역할을 부여했다.

신왕의 국정 안착을 도운 조선시대 원상제처럼 기존 경영진과 신진 경영진이 일정 기간 동거하면서 선임자의 경험과 후임자의 진취성이 잘 어우러져 더 나은 기업 성과를 창출하는 한국형 경영 승계 모델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