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산업팀 이상우 기자

건설산업선진화 방안에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발주자 역량 강화’이다.

발주처가 똑똑하다면 이번 선진화 방안에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똑똑하다면 저렴한 가격에 성능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듯이 말이다. 시장의 원리에 따라, 당연히 나쁜 물건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발주자는 똑똑해지기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당초 턴키 공사의 도입 배경이 변질돼 발주자는 속 편한 발주방식으로, 건설사는 좀 더 남는 장사를 하려고  입낙찰 비리가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설계 내용이 다른 각각의 건설사가 내놓은 수백억원의 견적이 1% 내 차이를 보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동안, 수십억원 설계비조차 부담스러운 대다수 업체들은 대형 건설사들만의 리그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벤치워머 신세였다.

주관적 심사가 평가의 핵심인 '최적가치낙찰제'는 시범운영한다는 말만 있었을 뿐 좀처럼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재입법예고 중인 발주자에 대한 책임강화 방안을 담은  조항(건산법 제86조의2) 역시 ‘건설업자 요청시 규정에 의해 발주자의 책무 점검·확인결과 공개 가능’으로 정했다.

특별히 비공개로 정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공개가 원칙임에도 의무화가 아닌 ‘공개 가능’으로 수정한 것이다. 정보공개는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역시 낙찰자 결정과정의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주자에게 책임과 권한이라는 칼자루를 쥐어 주겠다는 정부의 선진화방안에 해당 공무원 조직은 부담스럽기 그지 없다. 책임이 따르는 권한은 싫다는 것이 속내다. 

건설업계가  “4급이상 기술 고시 패스한 똑똑한 인력으로 직접 평가하고 책임지면 될 일이지, 건설현장을 잘 모르는 교수들은 왜 끌어들이냐”는 선정적인 비판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발주자 역량강화를 정부에 제언한 한 교수는 “공무원 조직의 발주자 역량강화는 직급과 행정인력으로 하고 있다”며 “주관적 심사 강화를 위한 인력평가 자체를 공무원 조직의 연공서열 파괴로 인식해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서 이미 발주자 역량강화는 물 건너간 얘기다. 때문에 선진화방안 역시 비관적이라는 의견 역시 비약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공무원 조직이 항목별 점수로 표기되는 ‘엑*파일’로 똑똑해지겠다고 하는 동안 건설업체는 시험도 보기 전에 점수를 알고 있는 학생이 되는 코미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부의 건설산업 선진화방안의 구체적인 추진전략 내용에는 ‘건설사업자 보호는 발주자 역량 강화(Paradigm Shift)’로 가능하게 하고 ‘똑똑한 발주자가 좋은 품질생산을 유도’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알아야 면면장(免面牆)’이다. 발주자가 똑똑해지기 싫다면 건설선진화방안은 오히려 건설업계의 얼굴을 가로막는 담장이 될 것이다. 발주처가 똑똑해야 ‘선진화’라는 높은 담장을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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