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산업팀 구성헌 기자

신울진 원전 1·2호기 공사 입찰의 공회전이 도를 넘어 목이 따가울 지경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들이 뛰어들어 4파전 양상을 보이며 업계 관심을 끌었던 이번 공사 입찰은 유찰과 연기를 거듭하며 달아올랐다, 이제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당초 지난 달 4일 실시키로 했던 입찰이 국내 사상 첫 원자력발전소 수출로 주목받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입찰로 인해 10월말로 잠정 연기됐기 때문이다.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입찰연기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만약 지난 달 낙찰자가 선정됐을 경우 이 입찰가가 UAE 원전입찰에도 영향을 끼쳐 업체들의 부담을 키웠을 것이란 우려에서 연기됐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만약 신울진 원전 입찰에서 저가로 낙찰이 이뤄졌다면, UAE가 향후 가격협상에서 공사단가 인하를 우리 건설업체들에게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이같은 일련의 상황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그간 계속된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에서 비롯됐다. 즉, 이번 원전입찰 연기가 계속된 데는 업계가 꾸준히 문제제기 해 온 ‘최저가 낙찰제’가 결국 국내 건설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 어떤 공사보다 안전성과 품질이 중시되는 원전공사를 최저가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이런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일이라고 개탄한다. UAE만 하더라도 원전공사를 위해 실사단까지 보내 꼼꼼히 챙기는 데 반해 국내 업계의 모습은 부끄럽다는 말도 들린다.


이번 신울진 원전 입찰에 참여중인 A건설사 관계자는 “신울진 입찰은 한마디로 웃기는 입찰”이라며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는 60%대 가격으로 원전공사를 수주한 업체가 외국에는 어떻게 제값 받고 공사를 할 수 있겠느냐,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순수내역입찰제 등을 도입해 선진국들처럼 하려고 해도, 결국 쏟아지는 로비와 외압으로 더 시끄러워져 어쩌면 지금의 제도들이 국내 특성에 가장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체념섞인 푸념까지 털어놓았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발주자들도 의지를 가지고 (최저가 낙찰제 병폐를) 바꾸고 싶다”면서도 “순수내역입찰제를 하더라도 부담도 크고 실제로 밀어붙이면, 이를 추진하는 담당자들의 목이 몇 명은 날아갈 것”이라는 거친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들의 체념이 이렇게 깊지만, 현재 우리 건설업계의 자화상은 변화를 거부 또는 체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수주산업’의 특성상 끊임없이 일감을 따내야하는 건설업계의 숙명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1조6000억원에 이르는 공사비가 책정된 신울진 원전과 그에 버금가는 액수가 달린 UAE 공사수주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치열한 가격 경쟁이 예상되며, 결국엔 '운찰'이었다는 불만도 터져나올 것이다.

그래도 한걸음씩 발전해 온 우리 업계가 이번 낙찰 후폭풍에 휘둘리지 않고, 조금의 변화를 모색해보길 바래본다. 그렇다면 신울진 원전에 투영된 어두운 자화상보다 더 나은 ‘자화상’을 조만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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