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인간의 외모가 모두 다르듯이 사람의 생각 역시 다 다르다. 생각은 다르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는 다름이 없고, 개선의 속도와 그 범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갈등이 존재해왔다. 1945년 해방이후에는 좌익과 우익의 이념대립이 심했고, 이후 산업화기와 민주화기에는 영호남 지역갈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우리가 겪고 있는 남녀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도 무시하기 어려운 갈등영역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갈등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닐까 한다.

■ 가치관 공존부정, 민주주의 위협

보수와 진보는 대북, 안보, 북한 인권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건국, 법인세, 복지, 무상급식 및 양육, 교육(특목고) 등 많은 분야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 대북 및 안보에서는 응징과 대화로,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적극과 소극으로, 반면 인도적 지원은 소극과 적극으로, 건국은 1948년과 1919년으로, 법인세는 인하와 인상으로, 복지는 제한급식과 무상급식으로, 교육은 고교평준화 여부로 대립하고 있다.

단정할 순 없지만, 연령이 젊을수록, 또 친 노조적일수록 진보에 가깝고,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강남3구를 보수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부유할수록 보수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를 논함에 있어, 보수를 부패, 타락, 무능으로 여기면서 불의와 결탁한 탐욕스러운 기득세력(적폐세력)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듯, 진보진영 속에 친북이나 종북 인사가 속해 있다고 해 진보를 친북이나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도 잘못이다.

더 나아가 민주, 정의, 인권, 소통 등 멋있는 단어를 진보의 것으로 보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여기서 논하는 보수에는 극우가 제외됐고, 극좌 역시 진보에서 배제했다.

보수의 특성을 정리해보면(진보는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보수는 인간의 이성을 불신하면서 시간의 테스트를 이겨 낸 경험과 전통과 상식을 중요시한다. 이 점에서 신속하고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진보와 구별된다. 또 보수는 엘리트주의를 인정하면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를 점하고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보수가 관습과 전통을 중요시한다고 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중함과 느린 변화를 옹호할 뿐이다.

보수는 자유를 중요시하기에 사적이익의 자유로운 추구를 중요시한다. 보수는 (경제적) 평등을 달성할 수 없는 유토피아로 보게 되는데, 이는 인간은 다양한 조건 하에서 출생되었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은 필연적이며, 이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기회의 측면에서 동등하지만, 평등과 결과의 측면에서는 동등할 수 없다고 한다.

■ 상대를 인정하고 함께 공생해야

또 보수는 누군가를 끌어내림으로써 인간의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보지 않는다. 평등은 상향적 평등을 지향하므로, 불평등 해소는 약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이를 꾀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어서는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 없다”는 링컨의 말을 지지한다. 결국 평등만을 지향하면 자유와 평등 모두를 잃게 되지만, 자유를 추구하면 평등만을 지향할 때보다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가 되기 쉽다. 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고,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패기나 체력도 예전 같지 않으며, 또한 나라 걱정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위 문제들에 대한 나의 접근방법을 종합해 보면 보수에 가깝다. 그렇지만 보수의 길을 맹종하지는 않는다. 가치관에 비춰 양심적인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경제민주화는 찬성하면서 대북안보에 대해서는 대화보다 응징에 좀 더 무게를 두게 된다.

이념이나 가치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누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이 자체가 문제될 수 없다. 문제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맹목적이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특히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풍토에서는 어떤 이슈에 관한 주류의견에 대해 소수의견을 입 밖에 내기가 어렵게 된다. 가치관의 공존을 부정하는 것은 이를 전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기에,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보다 분명히 알고 상대를 인정하며 함께 공생해야 한다. 두 날개로 날지 않으면 날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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