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빅데이터 ‘명암’
4차 산업혁명 선도 위해 의료 빅데이터 사업 추진,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시민단체 "효용론 과장… 개인피해 최소화 법률 정비"

▲ 전 산업분야에 걸쳐서 최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일대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보건의료계에도 밀어 닥치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심평원 및 약학정보원 개인질병정보 판매 행위로 본 현 정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 전략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전 산업분야에 걸쳐서 최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일대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보건의료계에도 밀어 닥치고 있다. 대형병원이든 중소병원이든 갈수록 심화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공지능(AI)과 정밀의학(개인의 유전정보·진료정보·생체정보 등을 빅데이터화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는 의학)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들에 대한 활용도를 높여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인공지능과 정밀의학 성공의 밑바탕이 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질병관리본부·국립암센터와 개별의료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보건정보를 총칭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에 의한 건강검진 의무화로 축적된 건강데이터와 양질의 의료데이터를 갖춘 결과 지난 2015년 OECD 보건의료 데이터 거버넌스 수준통계에 따르면 OECD 22개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에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방대한 보건의료 데이터를 집적해 놓고 있다.

이런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질병의 체계적인 예측·감시를 통해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와 같은 상황을 예측하는 데 활용할 수 있고 건강정보 통합서비스 등을 만들어 국민들이 전국 어느 병원에서든지 쉽게 진료정보를 공유해 국민이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나아가 의학·정책 연구에 활용해 소외계층 등 의료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한편 고령화시대 의료비용 절감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단을 발족하고 주요 공공기관과 유관 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공공보건의료 빅데이터 관련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보건복지예산에도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으로 115억원을 편성해 지속적인 추진 의사를 천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욕적인 빅데이터의 활용 정책 추진에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집적 과정에서 개인의 유전자정보·생체정보·진료정보 등 민감한 각종 정보가 유출돼 경제적 피해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최근 3년간 건강보험 진료데이터 기록을 8개 민간보험사 및 2개 민간보험연구기관에 보험사고 위험률 연구와 보험상품 개발 등의 목적으로 판매한 사실이 공개돼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약학정보원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의료 빅데이터 기업 IMS헬스에 50억건에 이르는 우리나라 국민 4천만명의 처방전 정보를 판매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재판에 이르기도 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적절한 법적 근거 없이 공공기관이 개인의료정보를 사기업에 유출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국민 일반의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불신, 의료인과 환자간의 불신을 더욱 부추겨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며 당초 기대했던 국민의료비용 절감이 아니라 증가를 불러 올 수 있다고 비판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의사)은 "현 정부의 보건 의료 빅데이터 사업은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보건의료 분야 정보를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정부 3.0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개인 비식별 가이드라인은 비식별화 수준도 미흡하고 재식별화하기도 쉽게 돼 있어서 개인 정보 보호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실제 의료는 임상시험을 통해 이뤄지고 있어 현재 수준에서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효과는 크지 않다"며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밋빛 환상만으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일축한다.

이어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건강 정보의 주체인 국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개인 정보 유출 위험을 최소화하고 사후 피해대책이 마련된 법체계를 강구한 뒤에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혜진 건강과 대안 연구원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빅데이터 사업 일반과 보건의료분야는 논의의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며 "보건의료 빅데이터 정책이 공공으로 획득된 정보를 이용해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데 반해 정보화에서 소외된 계층에게는 차별과 배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보건 빅데이터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충분히 인식해 관련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계획이다"며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약 30억원이 삭감돼 본격사업이라기보다는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각 정보가 개별기관별로 나눠져 축적돼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어 이를 한데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시민사회 단체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의견을 수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소통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와 활용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현욱 아주대 의료정보학과 교수는 "정부는 양자간의 충돌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법률을 정비하는 가운데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생산하는 관련 단체간의 협의체·거버넌스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빅데이터의 실제 소유권은 국민 전체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실제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관련 정책을 수립해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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