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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대통령 전두환과 12·12 그리고 5·18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일간투데이
  • 승인 2017.12.11 17:08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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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의 서거로(10 · 26사태)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정치활동의 제한을 받았던 많은 정치인들이 해금되면서 ‘서울의 봄’이 찾아왔는데, 봄날은 그리 길지 못했다. 당시 대통령시해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이였던 전두환 소장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군사반란을 저지르고(12 ·12사태), 신군부세력의 쿠데타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5 · 18 광주사태). 훗날 접하게 된, 5·18 당시 계엄군들이 선량한 시민을 학살한 영상은 차마 눈뜨고 직시하기 어려운 참상이었다. 얼마 전 ‘택시운전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다시 보게 됐는데, 영화가 끝난 후 아내와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한 참을 앉아있었다.

1980년 8월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데, 대통령 전두환 은 동년 10월 제5공화국 헌법을 확정하면서, 제12대 대통령(임기 7년)으로 대통령선거인단에서 역시 간선으로 다시 선출됐다. 전두환 정부의 출범이후, 광주사태에 대한 해명과 정부의 정통성부재를 다투는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민주화의 열기는 더욱 고조됐으며, 국민들의 저항운동은 날로 더 커져만 갔다. 1987년 전두환은 88올림픽준비를 이유로 개헌은 올림픽 이후로 미룬다는 내용의 4 ·13 호헌조치를 발표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발생하자(6 ·10 항쟁),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에 의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 ·29 선언’이 발표됐다. 1987년 10월 새 헌법(현행 헌법)이 제정 공포됐다.

■ 퇴임후 ‘안전장치’도 무용지물

1987년 12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전두환은 1988년 2월 퇴임했다. 동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대패하자, 노태우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친구인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를 보냈다. 노태우로서는 도도하게 흐르는 민주화의 물줄기를 다스리기 힘들었고, 이를 다시 누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레임덕은 임기 말,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를 들춰내면서 시작되는데, 권좌에서 물러나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화살을 쏜다. 권력자들은 퇴임 후 자기를 보호해줄 안전장치를 확보하려 하지만 성공한 예는 없다. 이것이 인간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예외가 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전두환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12·12사태, 광주시민에 대한 유혈진압, 천문학적 비자금을 이유로 두 전직 대통령을 동시에 구속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동시에 구속한 것은 세계역사에도 그 유례가 없다. 김영삼 정부가 전두환 노태우를 처벌한 과정은 정리할 가치가 충분하다.

정승화는 전두환의 12.12사태를 군형법상 반란죄로 고소했는데, 검찰은 반란죄에 해당하나 대통령으로서의 공헌을 참작해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전두환은 5·18사태의 내란목적 살인으로 고소됐는데, 검찰은 새로운 질서를 만든 경우 정권창출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행위는 사법심사가 배제된다고 하면서 내란죄여부는 판단하지 않고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자신이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짐이었다 해도, 당시 검찰의 모습은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궁색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건이 덮어지는 가 했는데, 노태우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폭로되면서 검찰은 위 사건을 재수사했고, 12·12는 반란죄로, 5·18은 내란죄 등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두 범죄 모두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게 되자, 김영삼 정부는 두 개의 특별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헌정범죄시효법’과 ‘5·18민주화운동법’이다. 전자는 군형법의 반란죄 공소시효를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12·12사태를 처벌하기 위함이며, 후자는 1979년 12월 12일부터 1980년 5월 18일까지의 헌정질서파괴행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하고 있는데, 이는 5·18 학살을 처벌하기 위함이었다.

■ 인명학살 합당한 처벌 뒤따라야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출세의 단계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수신과 제가가 가장 중요하고 치국평천하는 덤이기 때문이다. 두 전직대통령은 평천하를 이룬 것 같지만 모두 덧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자신의 힘을 빌려 기업의 팔을 비틀어 천문학적 숫자의 비자금을 긁어모았다는 것은 어디에 내놓기도 부끄러운 국가적 수치이다. 더 나아가 집권과정에서 빚어진 인명학살은 도를 닦아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두 명의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읽혀질 조사의 내용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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