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광균

노신魯迅
김광균



시詩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것의 베개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내린다.

노신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上海 호마로胡馬路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어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출처 : 시집 '설야' 시인생각(2013)

▲“아무리 체격이 좋아도 머리가 우둔해 가지고는 쓸모가 없다. 기껏 총살당하거나 자기 나라 사람이 총살당하는 것을 구경하는 게 고작이다. 중국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의학보다도 정신의 개조이다. 그리고 정신 개조의 가장 유력한 무기는 문학 이외에는 없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이 암흑기에 처한 조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체험하면서 깨닫고 헌신했던 것은 문학의 길이었다. 지역은 다르지만 엇비슷한 시대를 거쳐 온 김광균 시인이 노신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은 민족개조를 외치는 지사의 모습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피곤’한 소시민 가장의 모습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를 고민하면서 “잠을 못 잔다.” 그에게 ‘밤눈’은 이제 더 이상 “먼―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아니라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이고, “먹고 산다는 것” 만큼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일까. 김광균 시인은 37세 때부터 문필을 중단하고 경제활동에 투신했다. 노년에 다시 문학의 길로 돌아오긴 했지만. 노신과 김광균, 두 작가의 삶의 궤적을 통해 무엇이 자기 가족과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굳세게 살아온” 열혈 지성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아Q정전'의 ‘아Q’처럼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렇게나 쓰러져서 곧 잠들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김광균(金光均)
△1914년 경기도 개성 출생, 1993년 영면.
△개성상업학교 졸업.
△1926년 '중외일보'에 '가는 누님' 발표로 등단,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 당선.
△1936년 '시인부락', 1937년 '자오선' 동인.
△1950년 실업계에 투신하여 한국경제인연합회 이사, 한국무역협회 이사 등 역임.
△1990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시집 : '와사등(瓦斯燈)' '기항지(寄港地)' '황혼가(黃昏歌)' '추풍귀우(秋風鬼雨)' '임진화(壬辰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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