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2>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무릇 길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존재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길이 아니었던 곳도 한 사람이 가고, 또 한 사람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졌을 터. 중국의 유명한 문학가이며 사상가인 루신(魯迅)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길은 어떤 형태였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최초 인류의 발자국을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의 조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존재는 400만년 전에 생존했을 것으로 보이는 원인(猿人)류다. 이들은 석기를 사용해 나무 열매를 따먹거나 짐승을 사냥해 먹고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길 또한 인류의 발전과 맥을 함께 해왔다고 한다면 길의 역사 또한 400만년이나 된 셈이다. 50만년 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길이란 야생동물이 다니는 통로였을 것이다.

원인(猿人) 다음은 원인(原人)이다. 이들은 점점 가볍고 작은 석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고, 나무의 끝을 뾰족하게 깎아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어 사용했다. 작은 집단을 이루고 주로 사냥을 하며 삶을 영위했던 이들이 이용한 길은 비교적 자주 다니는 곳에 희미한 발자취가 만들어낸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과 모습이 거의 흡사한 인류가 등장한 것은 약 20만년 전으로 이들은 훨씬 가볍고 다양한 석기를 사용했다. 또 날쌔고 민첩한 동작으로 새와 짐승 등을 잡아먹으며 동굴에서 집단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작은 규모라고 하더라도 어떤 집단이 일정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면 길의 발생요건은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다시 거주지로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적인 선형(線形), 바로 이것이 길의 시작이었다.

인류가 길을 개척할 때 최초로 사용한 도구는 삽도 아니고 곡괭이도 아니고 다름 아닌 발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다니게 되면서 밟히게 된 땅은, 풀이 살지 못한 채 붉은 흙을 드러내게 되고, 꼬불꼬불하고 가느다란 통로는 차차 굳어지고 넓어지면서 길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의도나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길에 돌멩이나 나무토막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걷어내기도 하고 무성한 풀들은 제거하기도 했을 것이다.

길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면서, 여러 형태가 생겨났다. 새와 짐승을 잡으러 다니는 수렵의 길이 생기고, 물고기나 조개가 많은 곳으로 통하는 길이 생겼다. 먹는 물, 즉 샘물이 있는 곳으로 통하는 길도 생겼다.

이런 길들은 이용 빈도에 따라 큰 길과 작은 길로 갈라진다. 이른바 길의 등급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많은 길 중에서도 가장 발달된 길은 식수로 향하는 통로였다. 이처럼 원시시대에도 선택과 집중은 자연스러운 삶의 원칙이었다.

길이 점차 발달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인지능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교섭이 확대되면서부터다. 길의 발달을 촉진시킨 직접적인 요인은 도시의 성립과 물자의 교역, 정복을 위한 전쟁과 통치, 대량생산의 경제체제 등이었다.

돌과 동물의 뼈로 도구를 만들고 불을 사용하면서 작은 집단을 이루어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는 중석기시대에 접어들어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농경과 목축이 가능해졌고 이때부터 수렵, 어로, 채취로 생활하던 자연약탈경제로부터 자연을 이용하는 생산경제로 바뀌게 되었다. 기원전 8000년 내지 6000년 무렵인 이 시기는 도로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빙하시대가 끝나고 북반구에서 빙하가 북쪽으로 물러나게 되자 남쪽은 점점 건조해져 사막으로 변한 곳들이 많았다. 동물들은 당연히 오아시스로 모여들었고 이 때까지 흩어져 살던 인류도 동식물을 따라오면서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게 된다.

몇 군데의 오아시스 지대에서 집단적 공동생활을 하게 되면서 길은 급속도로 발달하게 되고, 물을 이용한 운송수단인 배와 동물을 이용한 수레도 발명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시대 이전의 길에 대한 유적이나 유물은 발견된 것이 없다. 농경과 목축으로 인류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지만 인간의 욕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물건과 아름다운 장신구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 사람들은 이제 원거리에 걸쳐 교역을 시작했다.

 역사상 대표적인 교역로는 기원전 3000년경에 유럽을 남북으로 관통했던 호박(琥珀)도로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한 비단길이었다. 지질시대 수지(樹脂)가 땅 속에 묻혀 생긴 일종의 화석인 호박은 유럽 여성들의 장신구로 환영을 받았고, 중국에서 생산된 비단은 특히 서방세계의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아 이를 얻으려는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교역로와 함께 발달된 것이 전쟁과 통치를 위한 길이었다. 페르시아 왕도와 로마 도로, 나폴레옹이 건설한 도로 등이 바로 대표적인 군용도로다. 적진 침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많은 수고와 자금을 들여 닦은 길들을 보면 도로가 지니는 전략상의 중요성 또한 절감할 수 있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