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발상지 홍산문화의 구성원이 동이족
중국은 우리 선조가 뛰어놀던 마당, 풍수의 뿌리와 줄기는 우리의 것

풍수관련 책을 읽어보면 풍수가 중국에서 들어 왔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으나 풍수가 오롯이 중국의 것이었다는 표현은 옳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은 중국과 대한민국이 완전히 다른 나라이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중국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영역은 모호해지거나 겹쳐진다.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국가가 나타나기 전에 문화집단이라고 기술하는데, 신석기시대의 문화로 만리장성 동북부에서 발견된 홍산문화가 있다. 요서지방에서 출토된 홍산문화는 인류문명의 발상지라고까지 언급되고 있다. 6-7천년전에 우수한 문화집단이 살았다는 증거다. 이 문화집단의 구성원은 상투머리를 한 동이족임이 드러났다.

역사를 좀 더 내려와서 상(은)나라를 살펴보자. 상(은)나라는 3천500년전의 국가로 역사적으로 실제로 존재한 국가이다. 상나라의 기원이 홍산문화라고 본다. 홍산문화는 네이멍구의 적봉시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이족의 본거지로써 추측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기후의 변화로 중원으로 진출을 꾀했던 것이다. 이곳은 근대사에 이르기까지도 몽고족계열인 몽고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이 지배했던 지역이다. 상(은)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적어도 동이족이 건설한 나라인 만큼 같은 혈연과 같은 생각, 같은 문화를 가졌다고 추정되므로 대한민국의 줄기가 되는 것이다.

한자의 출현은 갑골문에 의해 증명되었는데, 상(은)나라 이전에 있었다는 하나라의 고대유적에서는 한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문자란 하루아침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므로 적어도 흔적은 있어야 하는데 전혀 나타나지 않으므로 해서 하나라와 상(은)나라는 한 지역에 같이 산 종족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시대를 달리하여 중원을 지배한 이질적인 문화집단으로 본다. 문자가 있었던 동이족과 그렇지 않았던 원시적인 서부족(한족의 조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서 중국이 자기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자.

속지주의 또는 속인주의에 근거한다. 중국은 만주가 자기나라의 영토이니까 그곳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나라는 자기나라의 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고구려까지도 자기나라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속지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몽고의 황제 징기스칸이 중국을 정벌하여 식민지를 세운 것인데 자기 나라의 황제라고 말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속인주의는 몽고반점을 지닌 조상들이 만든 역사는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한족은 몽고반점이 없다. 그러므로 상나라의 역사를 위시하여 발해의 역사까지 우리의 역사에 속하는 것이다. 속인주의는 그 구성원의 생활방식과 문화까지 포함한다. 속지주의에 근거한다면 우리가 중국을 정벌하면 중국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인지를 반문해 보면 쉽게 결론이 난다.

혹자는 한반도에는 상나라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주장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의 주 활동무대가 네이멍구와 라오닝성을 중심으로 한 요서지역 일대였기 때문이다. 고구려 이후 동이족의 일부가 한나라의 극성과 기후의 변화로 한반도로 많이 유입된 것이다. 5천년 전의 동아시아의 기후가 거의 아열대 기후여서 만주가 살기 좋은 땅이었는데 점차 추위가 내려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어 남쪽으로 이주를 한 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의 문화적인 유적이 한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상(은)나라도 고조선과 함께 동일한 문화체계를 가진 동이족이다. 역사적으로도 긴밀한 흔적이 서경에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문화가 우리에게 전파되었다는 말도 한다. 전파란 건네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화집단이 통째로 건너왔다면 그것은 전파가 아니라 이동이다. 즉, 만주에서 발달한 엄청난 문화를 이룬 문화집단의 종족이 한반도로 이동한 것이다. 문화의 주체가 한반도로 들어온 것이므로 전파가 아니라 문화집단의 이동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기자조선의 후예들 무리가 들어왔다는 사실이나 흉노족의 집단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사실, 발해의 유민들이 들어왔다는 사실들이 바로 문화집단의 이동이다. 이는 문화전파가 아니라 한나라가 강성해지자 그들의 세력을 피한 이동이었다.

홍산문화의 고분과 상나라의 고분을 더욱 상세하게 연구해야 하겠지만, 이미 풍수적인 요소를 접목한 것으로 분석되어 발표되고 있다.

제자백가사상도 거의 동이족의 산물이었다. 지금의 중국철학으로 발표되고 있지만 동양철학이 남의 것이라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국철학의 기원은 이미 상(은)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후에 주나라의 영향도 많이 가미된다. 유교는 공자가 집대성 했고, 도가의 시조는 노자이다. 또한 무가의 창시자 묵자도 동이족이다. 세 사람 모두 동이족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풍수보따리 1편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풍수는 이미 6천년전에 주술적 요소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것이 체계화 되어 나타난 것이 후한시대의 청오경과 육조시대 곽박의 장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청오자와 곽박이 저술을 했지만, 이미 풍수적인 지식과 정보가 일정단계 이상 발전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한다.

풍수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대는 한나라와 당나라시대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지역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물로써 문화를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중국풍수와 우리의 풍수를 별도로 언급해야 한다. 천년이상이나 다른 상황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식생활이 다르고 기후가 다르면 사고의 영역과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무대가 요서지방이었을 때에는, 적어도 삼국시대까지, 중국의 것이 아닌 공동의 소유였던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발전한 당나라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와 사고적 공통성이 많이 남아 있던 시대였다.

중국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지만 중국대륙을 호령한 종족은 많지 않다. 4천년전 동이족은 중국대륙의 주류였으나 철기 무기를 앞세운 서부족에게 도륙을 당하여 쫓겨난다. 그 후로도 서부족과 동이족은 서로 정권을 번갈아 세우면서 역사를 만들어 왔다.

중국대륙의 역사는 동이족과 서부족의 헤게모니 투쟁사이다. 중국의 국가를 세운 종족을 보면, 하(서부족)-상(동이족)-주(서부족)-춘추전국시대-진(동이족)-한(한족)-수당(동이족)-송(한족)-원(동이족:몽고족)-명(한족)-청(동이족:만주족). 그 외에 요나라, 금나라가 유목민이 세운 나라로 중국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적어도 만주와 요서지방까지 만리장성 바깥은 우리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할 영역이다.

약간 억지스런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우리의 교육이 잘못된 결과이므로 오히려 당연한 결과이다. 앞으로 이에 대해 우리 풍수학인들은 많은 생각을 해 주시기 바라며 후속적인 연구를 지속할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선조가 뛰어 놀던 마당이었다. 우리의 사고를 한반도에 국한 시키지 말자. 아직도 중국에는 우리의 것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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