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정주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서정주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運命들이 모두다 안끼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山도 山도 靑山도 안기어 드는 소리, ……


■출처 : '미당시전집1' 민음사(1994)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법정 스님의 수필 「설해목(雪害木)」의 결구이다. 스님은 이 글에서 망나니 학생을 자애의 손길로 감동시킨 노승의 일화나 살인귀 앙굴리마알라를 귀의시킨 부처님의 이야기를 제시할 뿐 설교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 깊은 데서 무언가 꺾이는 것을 느낀다. 마치 “고집스럽기만 하던 소나무들이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처럼. 이 시에서 미당 시인 역시 그처럼 부드럽게 “내리는 눈발”에 대해 자분자분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수부룩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뭇 존재들이 ‘깃들이어 오고’, 운명과 이야기들, 청산마저도 ‘안기어 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곧 “괜찮다, 괜찮다”라는 크나큰 위로의 소리, 대자대비의 음성이다.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이루지도 못할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괜찮다, 괜찮다”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끄떡하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우려 들거나 단죄하고 조롱하는 표정과 말투로 상대를 밀어내지 말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괜찮다, 괜찮다” 서로를 감싸주고 포용하는 ‘눈발’과 같은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정주(徐廷柱, 호: 미당(未堂), 궁발(窮髮))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2000년 영면.
△중앙불교전문(동국대학교) 학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박사.
△1936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벽」당선으로 등단.
△한국시사 명예회장,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 문인협회 회장, 현대시인협회 회장,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 교수, 동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경기대학교 대학원 교수 역임.
△2000년 금관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자유문학상, 제22회 5·16민족상, 동국문학상 수상.

△시집 : '화사집(花蛇集)' '귀촉도(歸蜀途)' '서정주시선' '신라초(新羅抄)' '동천(冬天)'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서으로 가는 달처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노래' '팔할이 바람' '산시' '미당 서정주 시전집 1·2' '늙은 떠돌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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