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적폐청산은 ‘촛불혁명’, ‘나라다운 나라’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적폐청산은 선거에서도 재미를 봤고 지금도 진행형이며 정치보복이라는 맞대응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반대의견을 잠재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본질에 대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적폐청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권 내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여당 대표는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고 힘줘 강조하고 있다. 적폐청산의 본질, 목적, 대상, 방법, 한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적폐청산의 본질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며, 촛불혁명은 이를 가능하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적폐청산의 대상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돼야 하며, 적폐청산의 방법 역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적합한 수단과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없거나 거리가 있다면 적폐청산은 정당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적폐청산의 한계다.

■ 이념에 묶여 성과마저 ‘무가치’ 치부

먼저 적폐청산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그 대상이 돼야 한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대북심리전을 담당하는 조직을 누리꾼으로 위장한 처사는 불법행위이기에 책임을 묻는 것이지 적폐이기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편 특활비는 전형적인 적폐에 해당한다. 과거정권도 통치자금이란 미명 하에 관행으로 특활비를 쌈짓돈 같이 써왔고, 지난 정권도 이를 비자금으로 심지어 사적으로 유용했다. 차제에 국정원은 물론 모든 국가기관의 떳떳하지 못한 특활비를 대폭 없애고 삭감하고, 통제도 강화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의 지시로 ‘특활비’를 보낸 3명의 국정원장을 모두 처벌하려는 것은 적폐청산이라기보다는 정치보복에 가깝다.

한편 적폐는 잘못을 고치는 것이므로, 생각이 달라 고치는 것은 적폐청산이 될 수 없다. 생각이 달라 고치는 것을 틀렸기 때문에 바로잡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당시 어떤 결정을 내렸어도 모두 가능한 선택지였는데, 얼마 전 개성공단 폐쇄절차에 법적 문제가 있다는 발표를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둘째 적폐청산의 목적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두어져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먼저 인적 적폐를 청산한 후 개선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원인규명을 흐릴 수 있어 그런 것이지만, 책임자만 처벌하면 그만이라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제도와 시스템을 고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의 적폐청산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기보다는 정치보복의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과거에 매달리고 있고, 특히 MB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MB가 아니다. 보복의 악순환으로 망쳐질 나라의 미래다.

■ 잘못 고쳐도 과거까지 부정 말아야

셋째 가장 큰 문제는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최우선순위 과제는 일자리, 국가안보, 사회안전이다. 청산해야 할 가장 큰 적폐는 9년의 보수정부가 아니라, 도를 넘은 코드인사이며, 귀족노조와 강성노조의 개혁이고, 경제에 대한 규제혁파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제거이다. 또 공무원의 복지부동에 대한 개혁이며, 정치보복을 끊는 것이고, 청와대 비서실의 국정장악의 구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에 절여진 3류 정치와 정치인 등이다. 그런데 정착 고쳐야할 적폐는 내버려둔 채, MB의 다스나 BBK, 4대강 사업에 대한 재조사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일자리 창출, 국가안보 및 사회안전과 무관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과 거리가 멀다. 다스에 대한 검찰과 국세청의 집중적 조사는 적폐청산이 아니라 노무현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에 대한 2008년 기획수사를 되돌려주는 보복적 수사로 비쳐질 뿐이다.

넷째, 적폐청산은 정부출범 시 거치는 의식으로 통과의례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나의 이념으로 승격되어 전체를 옥죄이고 있고, 좋은 말도 몇 번 들으면 식상하게 되는데, 8개월여 모든 뉴스를 도배하는 적폐청산은 또 다른 적폐가 되고 있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턴가 이념에 사로잡혀, 기존의 업적이나 성과마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고질병이 국가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잘못을 고치는 것이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촛불정신은 항해를 제대로 하라는 것이지, 아예 항로를 완전히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적폐청산은 시효가 없지만, 덮을 것은 덮고 이제는 미래로 가자는 것이다. 과거와 싸우지 않으면 현재를 놓치게 되지만, 과거와만 싸우면 미래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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