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의 쓰레기


박남수




천상의 갈매에서
부어내리시는
부신 볕은
다시 하늘로 회수하지 않는
신의 쓰레기.

아침이면
비둘기가 하늘에



굴리면서
기억의 모이를
쫏고 있다.
다스한 신의 몸김을
몸에 녹히면서.

신의 몸김을
몸에 녹히면서
하루만큼씩 밀려서 버려지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시인들도 종이 위에 버리면서
오늘도 다시
하늘로 귀소하는 비둘기.



■출처 : '박남수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2012)

▲“시는 신의 말이다.”(투르게네프), “시는 희망 없는 종교요 모랄이며, 작품은 영혼의 수련장이다.”(장 콕토), “시는 감옥에서는 폭동이 되고, 병원 창가에서는 쾌유에의 불타는 희망이 된다.”(보들레르), “시란 천지의 마음이요, 군덕의 사원이며 만물의 문호다.”(연감류함), “시인은 세계의 눈이다.”(아이헨도르프), “시인이란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입법자다.”(셸리), “시인은 주위 세계의 양심 상태를 알려주는 지침이며 지진계이다.”(헤세), “시인이란 그 마음은 남모르는 고뇌에 괴로움을 당하면서 그 탄식과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뀌게끔 된 입술을 가진 불행한 인간이다.”(키에르케고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정의들을 살펴보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나 시인에 대해 ‘쓰레기’라고 규정한 사람은 없었다. 박남수 시인이 이 시에서 그렇게 비유하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시인은 ‘볕’과 ‘비둘기’와 ‘시인’을 동급에 놓으면서 이들을 “신의 쓰레기”라고 노래한다. 하늘이 햇볕을 버리고 회수하지 않는 것처럼 시인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 즉 시를 버리고 회수하지 않는다. 다만 “하늘로 귀소”하기를 바랄 뿐. ‘하늘’과 ‘볕’과 ‘비둘기’ ‘시인’과 ‘시’가 절묘하게 연결되며 깊은 감동을 맛보게 한다. 일제 식민지와 광복 전후의 혼란기, 전쟁과 산업화라는 우리 민족사의 격동기에 월남과 이민 등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살아온 시인으로서 존재론적 성찰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과연 시인이란 창작의 과정을 통해 하늘로 귀소하기를 바라는 존재이며, 시란 그 속에서 찾게 된 신의 쓰레기인지 모른다. 과연 “시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구성체”(브룩스)요, “가장 귀중한 국가의 보석이다”.(베토벤)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94년 영면.
△평양 숭실상업학교,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 졸업.
△1939년 '문장'에 '심야' '마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적치 6년의 북한 문단' 간행, '문학예술' 주재, 1957년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등과 ‘한국시인협회’ 창립.
△조선식산은행 평양지점장, 한양대학교 국문과 강사, 미국에서 과일 장사 역임.
△1951년 1.4후퇴 때 월남, 1975년 미국으로 이민.
△제5회 아시아자유문학상, 1994년 공초문학상 수상.
△시집 : '초롱불' '갈매기 소묘(素描)' '신(神)의 쓰레기' '새의 암장(暗葬)' '사슴의 관(冠)' '서쪽, 그 실은 동쪽' '그리고 그 이후' '소로(小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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