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속도위반이나 신호위반으로 무인 카메라에 찍혀, 경찰서로부터 돈을 내라는 통지를 한번쯤은 경험했을 성 싶다. 통지서를 보면, 범칙금 또는 과태료를 선택하게 한다. 범칙금은 직접 경찰서에 출석해 소정의 절차를 경유한 후 납부하게 하면서 벌점까지 추가되는데, 과태료는 20% 감경을 해주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일단 적은 금액인 과태료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선택은 적절하다.

국가의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형벌이라면 질서벌은 특정 조직 내의 질서 유지수단이다. 벌금은 형법의 8가지 형벌 중 하나로 형사소송절차에 의해 부과된다. 속도나 신호위반과 같은 경미한 교통법규위반을 형벌인 벌금으로 처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에, 도로교통법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해당되는 경우,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벌금에 갈음하여 범칙금을 통고처분의 형식으로 부과해, 교통단속의 실효를 거두면서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범칙금을 납부하면 처벌이 면제되며 납부하지 않으면 즉결심판절차를 통해 처벌을 받게 된다. 통고처분은 모든 도로교통법 위반행위에 대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속도나 신호위반과 같은 경미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만 통고처분이 가능하고, 음주운전이나 ‘난폭운전’(신호위반, 속도위반, 중앙선 침범, 불법유턴 등 둘 이상의 위반행위를 연달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운전) 등 중한 위반행위는 통고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범칙금으로 공공청사 짓는 한국

우리나라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많은 편이다. 2016년 한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4천292명이며 부상당한 사람은 33만1천720명이나 된다. 이를 인구 10만 명을 기준해보면, 영국 2.9명, 일본 3.8명, 독일 4.2명, 프랑스 5.3명인데 우리는 9.4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는 매년 8천억원 규모의 범칙금 및 과태료(이하, 교통벌금)가 걷히는데, 이 돈은 모두 국고(제주자치도만 도에 귀속)로 들어가 일반회계에 편입돼 공공청사 건립이나 임금 등 교통안전과 무관한 곳에 사용되고 있다. 교통벌금은 선진외국과 같이 특별회계에 편입시켜 교통안전개선에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교통벌금을 경찰청이나 자치단체에 교부해, 터널 안 조명확보, 노면 표시, 가드 레일 정비, 속도위반단속 장치 등 교통안전 관련설비에만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통안전특별회계의 가장 큰 장점은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주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통안전정책과 사업추진을 가능하게 해준다는데 있다. 일본은 1968년부터 특별회계로 교통안전교부금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미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역시 교통벌금을 교통안전시설에 투자하는 특별회계를 운용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 선진국 안전시설 투자…사고줄여

우리나라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교통벌금을 교통안전시설에 투자하는 ‘자동차교통관리개선특별회계’를 운용했다. 당시 뚜렷한 효과가 있었는데 이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1천명이나 넘게 줄었다고 한다. 재정당국의 반대로 폐지된 교통안전특별회계는 다시 부활돼야 한다.

공짜점심 없듯이 공짜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로 선을 제대로 표시만 해도, 어두운 터널의 공간을 밝게만 해도, 자주 반복해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장소를 고치기만 해도, 교통사고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교통사고는 단순한 재산상 손해에 그치지 않고, 인명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피해를 주기까지 한다. 해마다 4천명이 넘는 사망자의 유가족들이 겪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후천적 중장애를 입게 되는 부상자를 포함해 수십만의 부상자 및 그 가족들의 치명적 아픔을 생각하면, 교통벌금으로 공공시설을 짓는 발상은 매우 후진적이다. 교통벌금은 온전히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국민의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국가는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적극적 책무를 지닌다. 교통벌금을 특별회계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해, 이를 가지고 바로 국가가 ‘생명 및 신체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전 세계 6개 국가뿐인 ‘5030 클럽’(인구 5천만이면서 연 3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 7번째 진입을 목전에 둔 나라의 국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