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오후 5시 30분(요일에 따라 오후 6시 30분)이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온·오프제를 실시하고 있다. 업무 마무리를 못한 이들을 위해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마저도 겨우 10분이다.
"어이쿠 꺼졌네"라며 눈치 보지 않고 가방을 쌀 수 있어서 좋다는 일부 롯데계열사 직원들의 반응을 보면 변화하는 기업문화가 장점이 더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지 일의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기에 근무시간 내내 쫓기듯 일하는 기분이 든다는 의견도 있다. 한 직원은 PC온·오프제 시행 초반, 시간 내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해 결국 집에 와서 남은 일을 처리했다는 일화도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근무제 변화가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계열사와 가맹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경우 시급이 큰 폭으로 상승함에 따라 월급 역시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해 소폭 오르는데 그쳤거나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시 출퇴근을 해왔던 이들은 이른 퇴근보다 높은 임금이 더 낫다는 반응이다.
신세계는 근로시간 단축이 2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해온 장기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사이에서도 평균 노동시간이 긴 국가 상위권에 속하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과로사회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었다.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이 하필 정부의 임금 상승 시행과 맞물려 진행되니 비용절감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기업들은 새로운 시스템 적용이 비교적 낮은 임금을 받는 직원들의 입장까지 고려됐는지, 타이트한 업무강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충분한 설명을 통해 설득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 변화된 제도가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직원들과의 소통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만으로는 업무의 생산성과 직원의 삶의 질까지 높아졌다고 볼 수 없다.
임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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