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말기상태에서 기계에 의존한 단순한 생명의 연장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이 된다. 이미 사망에 진입했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해 사망과정을 자연스럽게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말 못할 고민가운데 호흡기 제거를 요구한 환자의 가족을 살인죄로, 가족의 간청으로 호흡기를 제거한 의사를 살인죄의 방조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모든 연명치료중단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도 없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명치료중단과 관련해, 1997년 보라매병원사건과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이 대표적이다.

■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환자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자, 환자부인의 퇴원간청에 의사는 퇴원을 지시했고, 집으로 이송된 후, 부인의 동의하에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해 환자가 사망했다. 대법원은 부인을 살인죄로, 의사는 살인방조범으로 보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보라매 병원사건). 한편 76세의 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삶을 이어가자, 호흡기제거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명했고, 학교법인 연세학원이 항소 및 상고를 했는데, 모두 기각됐다(김 할머니 사건). 대법원은 연명치료중단을 허용하면서, 중단의 일반적 요건과 절차를 제시했지만 그 내용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연명치료중단의 요건과 절차에 관한 입법이 절실히 요구됐는데, 2018년 2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으로써, 연명의료중단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법은 연명치료중단 대신 연명의료중단이란 용어를 선택하고 있는데, 이는 연명치료중단은 환자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중단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비윤리적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향유한다고 봐야 한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른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인간답게 맞이할 수 있는 권리로서, 연명치료거부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치료강제는 오히려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임종환자는 자신이 자손들에게 인격체로 기억되길 원하며 기계에 의해 목숨을 연명하는 존재로 기억되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가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존엄사는 회복할 수 없는 사망단계에 진입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므로 생명에 대한 임의적 처분인 자살과 구별된다. 또 생명의 단순 연장조치를 포기해 사망과정을 자연스럽게 진행시키는 것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 인간답게 맞는 죽음 스스로 선택

연명의료결정법(이하, 법)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연명의료중단을 허용하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말기환자에게는 불허하고 있다. 일반인도 연명의료거부를 문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미리 작성할 수 있다. 의사표시가 없거나 어려운 경우, 미성년자인 때에는 환자의 친권자의 의사표시로, 기타의 경우에는 환자가족(배우자, 직계존비속)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중단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경우에 담당 의사와 관련분야 전문의 1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99881234’가 한때 세간에 유행한 적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는 것이다. 원래는 234였는데 일(1)하다가 2-3일 앓다 죽자는 의미로 1자가 더 붙었다. 장수의 꿈과 아프지 않고 살다가 죽기를 희망하는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죽음은 인간의 ‘넘고벽’(넘을 수 없는 고차원의 벽)으로,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수반되는 아픔과 고통을 당하지 않거나 최소화되기를 우리 모두는 소망한다. 가족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은 어쩌면 죽음 그 자체보다도 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환자의 고통과 비참함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한없는 무력감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 시인은 “죽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은 것이라고, 또 너무 깊게 숨어버렸기에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아침에 깨어났는데 어제와 같은 집이라면 살아 있는 것이고 빛나고 아름다운 환경으로 바뀌어있으면 천국이라는 믿음으로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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