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려면 사다리꼴 형태의 구조를 보여야 한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대기업 등으로 기업 발전적 구조다. 그런데 중견기업 모임체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중견기업 목소리를 들어주길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일자리위원회와 4차산업명위원회 등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수준의 비중이 주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마침 정부가 2022년까지 중견기업을 5500개로 확대하고, 일자리 13만개를 신규 창출하는 '중견기업 정책 혁신방안'을 내놨다. 만시지탄이지만 옳은 방향이다. 중소·중견기업 중에 혁신역량이 우수한 곳에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해 2022년까지 매출액 1조원 이상인 월드 챔프 1조 클럽'을 80개 만드는 계획이 주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등 7개 관계 부처와 중견련, 산업기술진흥원, 코트라(KOTRA) 등 유관기관 및 학계, 업계 등 총 90여명으로 구성된 중견기업 정책혁신 범부처 태스크 포스(TF)를 통해 기존 중견기업 정책을 전면 수정한 '중견기업 비전 2280' 세부 이행계획을 5일 발표한 것이다.
중견기업 비전 2280 세부 이행방안은 글로벌 수출기업화 촉진, 지역 혁신생태계 구축, 포용적 산업생태계 조성, 성장친화적 인프라 확충 등을 추진전략으로 한다. 기술혁신 역량 제고 방안으로는 업종별 핵심 연구개발(R&D)를 활용해 향후 5년간 총 2조원을 투입한다. 주요 지원 업종은 전기·자율차, 에너지신산업, 바이오, 로봇 등 미래 신(新)산업 분야이다.

이런 청사진에 불구하고 실제 한국에서 중견기업은 ‘찬밥 신세’다.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70여 개 새 규제가 기업을 옭아맨다. 규모 키우기를 꺼리는 ‘피터팬 신드롬’이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다. ‘히든 챔피언’ 탄생을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한국에서 유독 중견기업 수가 적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독일은 전체 기업의 0.57%, 일본은 0.55%, 미국은 0.53%가 중견기업인 데 비해 한국은 0.1%도 안 된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톱3’에 드는 중견기업인 ‘히든 챔피언’의 경우 2015년 기준 독일이 1307개인 데 비해 한국은 60여 개에 불과하다.

실상은 심각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전체 기업의 0.08%(2979개, 2016년 기준)에 불과한 중견기업이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 중견기업이 산업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중견기업의 2009~2013년 연평균 고용 증가율은 12.7%로 전체 기업(3.4%)의 약 4배나 된다.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중견기업이 늘어날수록 소득 양극화도 완화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 생태계의 ‘성장 사다리’인 중견기업이 곳곳에서 나와야 우리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도 가능하다.

이제부터라도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체계화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가 중견기업의 애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들을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신(新)산업정책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계획대로 매출 1조원 이상, 수출비중 30% 이상, 연구개발(R&D) 집중도 3% 이상으로 혁신 및 성장의지가 높은 기업군을 월드 챔프 1조 클럽으로 육성하고, 수출 중견기업 비중을 50%로 늘린다면 우리 경제는 지속적 성장 모넴텀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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