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인

문(門)을암만잡아당겨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여달렸다. 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출처 : 참조 '정본 이상 문학전집', 소명출판(2009)

▲뛰어난 모더니스트였던 이상 시인은 미래파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되는데, 문학에서 미래파는 기존 전통과 가치에 대한 반동의 표현으로 문법을 해체하고 수학적 기호나 기하학적 도형의 사용, 자유어의 창조를 장려했다.
이는 실험정신이 풍부한 식민지 건축기사 출신 시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활로였을 것 같다.
이 시도 띄어쓰기가 무시된 채 연과 행의 구분이 없이 쓰여 있는데, 겨울밤 잠긴 문 앞에 선 화자의 불안초조하고 난감한 심리상태가 잘 나타나 있다. 화자는 ‘문패’를 지닌 가장임에도 자신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밤 속에 내쳐져있다. 왜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문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열리지 않아서”이지만, 사실은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안에 생활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가정 안에 채워있어야 할 ‘생활’이란 무엇일까. 실직과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생활고를 겪었던 시인의 삶을 돌아보면 경제 문제라는 게 자명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병든 가정의 원인이 생계의 곤란에만 있다고 여기는 건 너무 단순하고 안일한 발상이 아닐까. 가난과 질병과 고독에도 시를 통해 어떻게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다 요절한 비운의 천재 시인의 모습이 새삼 시리게 살아나는 것만 같다.

■이상(李箱, 본명: 金海卿)

△1910년 서울특별시 출생, 1937년 영면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1931년 '조선과 건축'에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를 발표하면서 등단.
△구인회 회원, '시와 소설' 창간호 편집 발간.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작품 활동.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관방회계과 기수, 제비다방 등 운영. 창문사 문예담당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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