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체계의 정밀성이 요청되고 있다. 환자의 뜻에 따라 연명(延命) 의료를 끝낼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2월4일부터 시행된 지 엿새째가 되고 있음에도 '존엄사' 가능 병원이 2%에 불과해 현장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 부족의 여파다.

예컨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택하고 연명의료계획서에 직접 서명한 환자의 서류를 병원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전송하기 위해 컴퓨터에 임시 저장했음에도 연명의료중단 표시가 몽땅 사라진 경우 등이 발생한 것이다. 연명의료관리기관에 서류를 업로드 해야 되는데 준비가 잘 안 돼 있는 데서 발생한 것이다. 환자의 선택과 다른 내용이 국가기관에 보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절차도 복잡해 존엄사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직계가족 모두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까다롭다는 게 현장에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만약 빠진 가족이 있을 경우 의료진이 최대 징역 3년의 처벌을 받기 때문에 아예 연명의료 중단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료진이 짧은 시간에 뭔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준비 미흡 실태는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병원급 이상 병원이 전체의 1.8%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나머지 98.2%의 병원에서는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의미다.

존엄사는 지난해 10월 16일부터 올 1월 15일까지 3개월간 시범적으로 운영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기에 의한 수명 연장보다 자연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웰 다잉을 추구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현재 마련된 연명법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어 여러 가지 충돌이 예상된다. 가족 간의 의견 불일치, 의사의 책임문제, 무연고자 등의 문제로 갈등의 소지가 많다. 현실에 맞게 존엄사법의 손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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