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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 直問卽答②‧끝] "박물관은 시대에 맞는 창조적 공간…빅데이터 통해 전통지식 습득할 수 있어"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의 삶과 철학②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이 황종택 일간투데이 주필(왼쪽)과 대담하면서 “박물관은 끊임없이 재밌어야 한
다”며 박물관의 경쟁 상대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어드벤처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류재복 기자

[황종택의 直問卽答①] "'맛있고,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박물관' 만들 터" 에 이어…

 

- 박물관 발전을 위한 내부 개혁의 필요성은 어떠한지요. 


▲오래된 물건을 보면 '박물관에나 보내라'라는 말을 하는 등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바로 박물관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박물관이야말로 가장 빨리 변화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 변화의 중심은 이용자인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매일 변신을 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박물관이 이렇게 크고 화려한 현재의 건물보단 스타필드나 롯데타워 같은 곳에 2개 층 정도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박물관이 고리타분하고 큰 건물지어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인식이 박혀있지만 이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에 전통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불광사라고 롯데타워 석촌 호수 남쪽에 사찰이 있습니다. 조계종 포교원장을 하고 계신 지홍 스님이 주지인데 이분께서 제게 '안 그래도 사찰에 탑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탑 대신에 저 뒤에 롯데타워가 탑을 하나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한술 더 떠 탑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드렸죠. 웃자고 한 말이지만 사실 민속박물관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잡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서 정보화가 필요합니다.

박물관은 우리가 소장 한 것의 2% 정도 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나머지 98%는 수장본입니다. 일반인들이 와서 볼 수 없습니다. 특별전을 통해 유물을 바꿔주며 변화를 줄 뿐이죠. 이젠 정보화가 이뤄져 정보가 공개된 유물은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통문화와 박물관에 대해서 포털 사이트보다 더 전문적인 콘텐츠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1월말부터 홈페이지를 개편했는데 통합 검색창에 예를 들어 '호미'라고 검색하면 우리 박물관에 있는 유물 호미들이 전부 나옵니다. 아카이브자료를 통해 호미를 사용하는 모습과 연구 서적이 제공되며 일목요연하게 호미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희귀한 유물 몇 개 가져다 놓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빅데이터를 만들어서 이용자들이 다양한 자기취향대로 그 정보를 혼합하고 개발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작업들을 박물관에서 해야 합니다.

- 국립민속박물관은 해마다 300만여 명이 찾는 한국의 대표 생활문화박물관으로서 한민족의 전통 생활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와 교육의 산 터전인데요. 

▲박물관은 치유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치열한 공간속에 살지만 박물관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현실과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각박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들이 유물을 보는 순간 잠기 과거로 다녀올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힐링(healing)이라고 할 수 있죠. 화나고 힘들 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박물관에 와서 과거와 전통문화에 대해 얘기하고 나면 상처와 갈등요소에 대해 치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만 원숭이 모자 연적을 보고도 울 수 있도록 '단장의 슬픔(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이 뭘까,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의 마음을 떠올리며 눈물 흘릴 수 있는,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아 치유하는 그런 공간이 돼야합니다. 갈등 현장에서 한번쯤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가 난 곳에 계속 머물지 말고 일시적으로 피해야하듯 말입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공간에서 과거와 만나고 역사, 문화와 만나서 돌아온다면 굉장히 많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겨울나기' 특별전을 마련했다. 지난 12일 오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관계자가 선조들이 사용했던 겨울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련한 추억을 환기하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자료 300여점이 나왔다. 기간은 내일부터 내년 3월 5일까지다. 사진=연합뉴스


- 열린 박물관을 위해 문화와 기술의 융합(Culture Technology), 교육과 오락의 융합(Edutainment), 세계 문화와 지역 문화의 융합(Glocalism), 자연과 박물관의 융합(Eco Museum)이라는 기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세계와 소통하는 창조적 문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박물관 연결망 구축을 들 수 있을 텐데요, 

▲외국인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현재의 문화일 수 있습니다. 신라 유물 사진과 싸이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싸이를 보고 한국을 떠올립니다. 현재의 한국문화는 유물이 아니라 싸이의 강남스타일입니다. 사실 외국 사람도 유물 자체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류 문화에 더 관심 있지요. 그래서 이를 실천해 전시를 풀어가는 방식을 현재에서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k-pop, 노래방, 배달민족, 때밀이, 아파트, 김치냉장고, 온돌, 지하철 경로석을 먼저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공간이 이어지면서 옛날 과거를 보여주는 순서입니다. 현재부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과거까지 볼 수 있습니다.

전시 기획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접근하기 힘들어하는데 포인트를 잘 잡아줌으로써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전시는 독일 내 한국 교포들도 재미있어 했습니다. 융·복합 통해 전통문화를 재밌고 쉽게 표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인공지능과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입니다. 오프라인 프로그램은 물론 온라인 사이버박물관 프로그램으로 느낌이 있는 체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상체험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기대됩니다. 

▲우리가 4차산업혁명 등등 미래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구두 상으로만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오면 구체적으로 우리 과거의 문화와 전통을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로 개발해서 미래 산업 요건으로 만들어갈 것인지가 보여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박물관은 현장이 있고 유물이 있고 전시공간이 있어 그야말로 멀티펑션(multi-function·다기능)한 공간인 만큼 빅데이터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지식을 알기위해 방문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 빅데이터를 통해서 입체적으로 전통지식을 캐 갈 수 있는 채굴(mining)공간이 바로 박물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채굴의 가치는 어떤 공간에서나 가능해야합니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고 실행됐을 때 비로소 영화제목처럼 현실 속에서도 박물관이 살아있는 것이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 외국인 관광객이 저조했습니다. 3년 전에는 최대 324만명이 방문했는데 2016년에는 약 272만명, 작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 180만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렇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우리 박물관의 68%가량이 외국인 관광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박물관 가운데 외국인이 가장 많이 옵니다. 그러다보니 국제정세에 따라 외국인 표본차 등락이 큽니다. 그만큼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이 그동안 어떤 옷과 어떤 집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를 바로 확인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동질성 확보 차원에서 민속박물관 교류를 비롯한 역할이 기대됩니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남북한 공동 등재 돼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에 아리랑 특별전도 한 적 있는데 그땐 남한의 이야기만 갖고 했었습니다. 그 이후에 한 번도 아리랑 전시를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정선, 문경, 함경 아리랑이 노랫말은 다르지만 리듬은 같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에는 정치적 개입이 있을 수 없고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일 뿐입니다. 

거꾸로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를 정치군사적으로 접근하는데 그보다 필요한 것은 공동의 정서와 공동의 생활문화를 갖고 있는 민속 문화 교류가 우선 이뤄져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문화로 하나 되는 민족,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 차원에서도 공동 교류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고고역사미술은 접근이 가능하지만 민속적으로는 아직 어렵습니다. 

- 살아오신 삶의 교훈을 들려주시죠. 

▲아버지는 농부였고 고향은 경북 안동 시골 깡촌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여기 관장이 된 것은 굉장한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이 됐는데 한 번도 제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한 적이 없습니다. 내 역할에 충실했을 때 다른 자리가 오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안내를 받았을 분입니다. 

요즘은 내가 뭘 하겠다고 정해놓으면 자리가 도망을 가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나왔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대부분 관장들은 소위 스카이(SKY : 서울대·고대·연대) 나온 사람들 혹은 대학교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런 학연, 지연이 없고 양반집도 아닙니다. 저는 힘든 자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탐내는 자리라서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했더니 한 단계씩 이뤄졌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등에 매달렸더니 어느 날 이렇게 과분한 자리에 와 있었습니다. 촌놈이 출세했습니다. 

박물관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소명감으로 일관한 천 관장의 삶의 철학이 묻어나는 모습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의 밝은 미래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한다. 

황종택 주필 resembletree@dtoday.co.kr, 정리=임현지 기자 
 

■ 천진기 관장은?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민속학 전공),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고전문학 전공)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5월 첫 공모절차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 별정직 관장직에 오른 천진기 관장은 '소탈함'이 넘친다. 1988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올해로 만30년째 박물관 근무를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 근무지가 민속박물관이었고 두 번째 직장이 청와대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세 번째 직장이 고궁박물관, 이후 다시 민속박물관에 왔다. 

경복궁에서만 일하고 있기에 30년을 매일 아침 입궐했다가 오후에 퇴궐하고 있다며 조상이 주신 복으로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서로는 <전통문화와 상징1>, <중요무형문화재2 (연극과 놀이)>,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시리즈, <한국동물민속론>, <한국 말 민속론>,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열두 띠 이야기>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채거리장에 관한 민속학적 고찰>, <농촌지역의 마실가기 관행의 연구>, <한국 띠동물의 상징체계 연구>, <울산암각화를 통해서 본 동물숭배, 생식신앙, 민속의례와 세계관>, <향토축제의 합법칙성 모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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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 주필 resembletree@naver.com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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