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의 건실화에 힘써야겠다. 흑자행진을 이어오던 건강보험 재정이 올해 1조2천억 원의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의 이런 예상은 당초 알려진 적자전환 시점이 1년 앞당겨진 것이다. 만약 공단의 자체 추계가 맞는다면 건보 재정은 7년 흑자행진에 종지부를 찍고 적자시대를 맞게 된다.

올해 적자 반전은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문재인 케어’가 본격 시행된 탓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의료비 중 건보가 부담하는 보장률은 우리나라가 6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에 크게 못 미친다. 국민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이 OECD 평균의 두 배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 부담을 낮춰 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는 5년간 필요한 30조6천억원 중에서 건강보험 누적흑자 21조원의 절반가량을 활용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재정을 통해 감당한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세금과 보험료가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지출은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대책으로 인구 고령화 여파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나라 살림살이는 눈앞의 현실만 봐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건보 공약을 했던 지난해엔 707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정부와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9년 이후 적자가 날 것으로 이미 예고한 상태였다. 건보 재정이 완전히 바닥나는 시점은 기획재정부가 2023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5년으로 내다봤다. 그런 마당에 대책 없이 건보 보따리를 푸는 바람에 당초 예고된 적자 도래 시점이 올해로 1년 앞당겨지게 된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현재의 건보정책이 유지되면 보험료율을 연간 3.2%씩 올리더라도 2026년쯤 건보 재정이 고갈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군인연금처럼 나랏돈으로 적자분을 벌충하거나 국민 부담을 대폭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의료체계도 개선,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문재인 케어 추진에 따른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 대책,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막기 위한 대책, 불필요한 입원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일차의료기관은 만성질환 관리 중심, 2·3차 병원은 입원 치료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불필요하게 상급병원으로 쏠림 현상만 가속화 될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인빈곤 문제를 생각한다면 건보의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성은 분명 있다. 하지만 문재인케어 시행 없이도 저절로 적자로 돌아서는 마당에 지출 속도를 지나치게 높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출이 늘어난 만큼 건보 무임승차와 과당청구 관행 같은 누수 현상을 막아야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속도 조절은 지속 가능한 건보 서비스를 위해 불가피하다. 필요하다면 국민 부담 확대를 위한 설득에도 나서야 한다. 전임 정부가 쌓아둔 누적 적립금을 다 털어먹고 생색만 내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다음 정부에 건보료 폭탄을 떠안겨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건보 재정이 다시 ‘적자 시기’로 접어드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민·관·정계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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