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한반도에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로 냉랭했던 남북관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특사가 오고 가더니 10여년만에 남북 정상이 다시 마주 앉게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를 '늙은 미치광이', '리틀 로켓맨'으로 비하하며 거친 설전을 주고받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오는 5월 만난다.

지난해 한반도 정세는 전통적인 '벼랑끝 전술'을 구가하며 갈수록 핵위협을 강화하는 북한이라는 상수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본인의 개성과 자국 이익 극대화라는 명분하에 '미치광이 전술'을 적극 구사한 트럼프 대통이라는 돌발변수가 맞물리면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다.

그 같은 엄혹한 안보환경에서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대화와 포용에 기반한 남북관계 정상화에 진력했다. 문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나라가 되레 중요한 결정에서 소외·배제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우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로 국제 정세가 급변했다. 남북간 긴장완화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뜨뜻미지근했던 중국이나 트럼프의 강경노선을 철저히 추종할 뿐만 아니라 한 달 전 평창동계올림픽에 와서도 '대화무용론'을 주장하며 딴죽걸기에 바빴던 일본이 '차이나 패싱'·'저팬 패싱'을 걱정하며 이 국면에 한 몫 끼어들려 애쓰고 있다.

세계 언론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잇달아 성취한 한국 외교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외교팀이 국제적 고립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북한의 절박함과 중간선거가 목전에 다가와 치적을 내놓아야 하는 트럼프의 이해관계를 냉철히 꿰뚫어 양자의 이해가 절충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내 제시함으로써 '외교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외교는 현란한 혀가 아니라 정확한 눈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러스트벨트(Rust Belt·미국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우리의 대표 수출품목인 전자·철강제품에 '관세폭탄'을 날리고 있는 트럼프 정부와 힘겨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우리 통상외교팀도 안보외교팀을 벤치마킹해 따뜻한 봄바람을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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