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출처 : '金春洙 詩全集' 민음사(1994)

▲건강한 사람들의 삶에는 외적인 대인관계와 개인적인 내면의 삶, 그리고 문화 경험이라는 세 개의 영역이 있다. 놀이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유산이 되는 모든 예술과 학문, 종교 등으로 뻗어나간 문화 경험 영역은 꿈과 현실의 중간에 위치하여 개인의 환상을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로 만들어 놓는다. 바로 여기에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 존재의 특별함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 예술에서 현실 원리에 의해 파괴된 개인의 꿈은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얼마든지 재구성될 수 있다. 샤갈은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으로 파리, 뉴욕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떠나온 고향의 추억을 그림에 담아내고, 1960년대 후반 우리의 시인 김춘수는 그 이미지를 시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시를 저마다 창조적으로 감상하며 누린다. 그것은 마치 ‘삼월에 오는 눈’처럼 계절의 경계를 뛰어넘고 ‘하늘’이라는 지역의 경계를 건너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그 사이 ‘눈’은 거목처럼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 움처럼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그 “눈이 오면”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건강과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쳐흐르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완전히 자유로운 창조의 공간이다. 우리는 거기에 관념시니 무의미시니 하는 라벨을 붙일 필요가 없다. 구태여 무어라고 해석을 달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그것을 향수하면 그만이다. “창조적인 삶이 없다면 거기에는 정신 병원에서 고독을 경험하고 있거나 자기 안에 유폐된 삶을 살고 있는 자폐증 환자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도널드 위니캇)


■김춘수(金春洙)

△192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2004년 영면.
△경기공립중학교 중퇴, 니혼대학교 창작과 중퇴, 경북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옭, 전혁림, 정윤주 등과 ‘통영문화협회’ 결성, 동인지 '魯漫派' 발간.
△1946년 '백민' '영문' 등에 시 발표, 시화집 '애가'로 등단.
△통영중학교 교사, 경북대학교 국문과 교수, 영남대학교 문리대학장, 제11대 국회의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문예진흥원 고문,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KBS 이사 역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자유아세아문학상, 경상남도 문화상, 은관문화훈장, 제5회 대산문학상, 제12회 인촌상, 제1회 청마문학상,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시집 : '구름과 장미' '늪' '旗' '隣人'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南天' '라틴점묘 기타' '처용단장' '서서 잠자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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