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 정경석 옮김






헤르만 헤세/정경석 옮김





젊은 구름이 조용히 푸른 하늘을 지나갑니다.
어린이들은 노래하고 꽃들이 풀 속에서 웃음집니다.
어디를 쳐다봐도 나의 피로한 눈은
책 속에서 읽은 것을 잊고 싶습니다.

진정 책에서 읽은 어려운 것들은
모두 녹아 없어지고 겨울의 악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눈은 생기 있게 회복하여
새로이 솟아나는 창조물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움의 허무한 것에 대하여
내 마음 속에 적어 둔 것은
봄에서 봄으로 남아 있으며
어떠한 바람에도 날려 가지 않습니다.

■출처 : '그대를 사랑하기에', 민음사(1995)

▲봄이 왔는데도 봄 같지가 않다. 연일 뿌연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고 있어서 가벼운 산책에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함이 봄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고 있다. ‘젊은 구름’과 ‘푸른 하늘’은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거리나 들판에서,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으로 가뜩이나 보기 힘든 ‘어린이들’을 찾아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텔레비전의 일기예보나 휴대폰으로 날아오는 미세먼지주의보 같은 안전 안내 문자가 마음을 어수선하게 한다. 아름다운 고향의 봄은 이제 우리의 추억 속에나 있는 걸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허무에 시대의 허무가 더해진다. 하지만 시인은 “내 마음속에 적어 둔 것은/ 봄에서 봄으로 남아 있으며/ 어떠한 바람에도 날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순진무구한 봄꽃이나 어린이들 같은, 내 마음속에 적어둔 아름다운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천국에서는 천국 가는 길의 지도가 필요가 없듯이 봄에는 봄을 모색하는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 뉴스를 들을 필요도 없다. 그럴 때 “진정 책에서 읽은 어려운 것들은/ 겨울의 악몽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우리는 자연의 책인 “새로이 솟아나는 창조물”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마음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헤르만 헤세(H. Hesse)
△1877년 독일 슈바벤 출생, 1962년 영면.
△마울브론의 신학교 중퇴, 칸슈타트 고등학교 퇴학, 베른대학 명예박사.
△튜빙겐의 서점에 취직하여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함.
△고트프리트 켈러상, 괴테상, 1946년 노벨문학상, 라베상, 서독 호이스 대통령 훈장, 독일서적업의 평화상 수상.
△시집 : '낭만적인 노래' '한밤중의 한 시간' '시집' '도상(途上)' '고독자의 음악' '화가의 시' '위기' '밤의 위안' '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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