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문대 명예교수·시인

지난 3월 2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과 6·25국군포로가족회, 탈북동포회 등 30여개 북한 인권단체 대표가 모여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회자로 나선 김태훈 한변 상임대표는 “북핵위기의 본질은 북한 주민에게 쓸 돈을 핵과 미사일에 퍼부어도 주민들이 말 한마디 못하는 인권부재에 있다”면서 “북한 인권을 외면한 북핵문제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차제에 대한민국 국민이나 정부는 인권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탈북민 주승현 박사가 저술한 책(조난자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눈길을 끈다. 탈북자에게 더 가혹한 시련은 빈곤과 외로움보다 차별과 편견이라고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탈북민의 범죄피해율은 한국인 평균의 5배, 자살율은 3배에 달한다고 썼다.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탈북자의 인권에는 놀랄 정도로 무심하다고 했다.

■외국인 못지않은 탈북민 차별

책에는 이런 글도 있다. “탈북자들은 어떻게든 탈북자인 걸 숨기려고 한다. 고향이 속초, 강원도라고 둘러대는 게 첫 번째다. 더 둘러댈 게 없으면 조선족이라고 한다. 탈북자는 취업이 안 돼도 조선족이라면 받아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얻고자하는 것은 자유다. 단순히 억압당하지 않는 자유뿐만 아니라 자존감과 자부심을 공유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곳을 뜻한다. 결국은 북한이 가질 수 없는 대한민국의 저력이자 제도의 우월성에 적응하는 문제다”

이광수는 개벽(開闢)지 23호(1922. 5)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했다. 여기에서는 우리민족 쇠퇴의 근본 원인이 허위와 이기심, 도덕성의 결여에 있음을 밝히고 그 단점을 교육적으로 개선하는 방법까지 제시했다. 그는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원인을 나태와 위선, 허례허식 등으로 보았다. 또한 요령과 술수, 시기심, 거짓말 등이 만연됐다며 이러한 습성을 버리지 않고는 독립을 이룩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국회를 보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법은 뒷전이고, 해를 묵히다가 자기들 직무유기는 반성도 없이 진흙탕 개싸움에 날새는 줄도 모르지 않은가. 우리나라 개국정신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니 모든 사람이 너그럽게 공생공영하자는 사상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 보편적 진리인 자유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다.

이는 모든 종교가 다 잘되는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바탕으로 탄생된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근간으로 발전해 나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랬던 이 나라가 어찌해 보호해야 할 약자를 짓밟는 마귀가 들끓게 됐는가.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를 빼어먹는 자”라는 말이 있다. 탈북민을 속여서 등쳐먹은 놈이야말로 그런 인간 말종이 아닌가. ‘조난자들’을 저술한 주승현 박사도 그런 자들에 의해서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종교가 승한 이 나라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민에 대해서 무관심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개헌보다도 탈북민 인권보호 시급

정부와 국민 모두 반성부터 해야 하겠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동포에 무관심했다. ‘북한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한 게 2년 전의 일이다. 국회 여당과 야당이 11년 가까이 싸운 끝에 가까스로 통과되기는 했지만 법은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법은 통일부에 북한인권침해사례를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하는 것과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는 것이다. 기록센터는 만들어졌지만, 인권재단은 아직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만들어진 국정원개혁위원회는 탈북자동지회 지원금부터 싹둑 잘라버렸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김대중 정부시절에 탈북자동지회를 만든 이후 역대 정부는 이 단체의 사무실 월세와 일부 인건비를 지원했다. 19년째 이어지던 지원은 현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끊겼고, 탈북자동지회는 일개 민간단체로 전락해 유명무실하게 됐다.(동아일보 2018. 3. 22)

이래가지고 뭐가 되겠는가.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말의 성찬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목숨을 걸고 이 나라에 왔다가 살지 못하고 이 나라를 떠난 탈북민이 한 둘이 아니다. 북한이건 남한이건 이 한반도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의 인권에 무관심한 정부가 어떻게 개헌안의 기본권 보장 범위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넓히겠다는 건가. 제발 말의 진수성찬이 아니기를 바란다.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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