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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순의 풍수 보따리] 산은 신의 지문이자 땅의 주인
  • 일간투데이
  • 승인 2018.04.25 17:23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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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풍수학을 지탱하는 줄기이다. 동아시아의 문화에서 산은 특별한 무게를 지닌다. 동이족이 가진 산악숭배사상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떠도는 태양계의 공전과 자전에서 지구의 원동력이 만들어졌으며, 여기서 지구상의 공기와 물의 일정한 흐름이 생겨났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예술품이 산이다.

하늘이 땅위에 있는 산의 갖가지 모양을 만들었으므로 신의 지문이라 말한다. 산은 땅의 주인이다. 산과 연결되어 있는 땅은 모두 그 산이 주인이다. 주인이 신통치 않은 땅은 있어도 주인이 없는 땅은 없다. ‘한 치라도 높으면 산이고 한 치라도 낮으면 물이다’라는 원칙이 이를 대변해준다. 산과 산을 경계지우는 것은 물이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자연의 원칙에 따른다.

산악숭배사상은 산이 가지고 있는 영험함에 대한 존경심이다. 산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준다. 빗물을 받아서 물을 한 곳으로 모아 주고, 동물을 길러 사냥감을 만들어주고, 산나물을 길러주며, 땔감을 얻게 해주고, 북풍한설을 막아주며 넓은 논밭을 펼쳐주므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은혜로운 존재로서 산신령이 으뜸이다.

산이 땅의 주인인 흔적이 산사의 이름에 남아있다. 가야산해인사, 속리산법주사, 설악산신흥사, 봉미산신륵사, 수도산봉은사, 지리산화엄사, 덕숭산수덕사, 영축산통도사, 조계산송광사, 토함산불국사 등등 모든 사찰에는 산의 이름이 사람이름의 성(姓)처럼 붙어있다. 산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절의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요즈음에 생긴 절로써 주지가 무식해서 일어난 소치이다.

■살 수 있는 터전 만들어 주는 산

절에 가면 빠지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산신각이나 칠성각이다. 산신각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나 무량수전, 극락보전 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소위 기도발이 잘 듣는 곳에 지어진다. 위치상으로 높다는 것은 그만큼 대우를 해준다는 의미이므로 산신령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

산신령이란 산에 귀신이 산다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산에서 하나의 자연을 본 것이다.

산은 흙만이 산이 아니다. 돌만이 산이 아니다. 물과 나무, 잡초와 산나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이 모든 것들을 망라한 것이 산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지속시키는 자연의 질서를 본 것이며, 그것을 산신령이라 일컬은 것이다.

한반도와 만주벌판의 주인인 백두산이 있는가 하면, 한양도읍지를 관할하는 삼각산이 있고, 수 백만명이 사는 관악산이 있으며, 심지어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독산도 있다. 죽어서 묻히는 산도 있고, 기도 드리러 가는 산도 있으며, 관광하는 산도 있고, 달랑 절 하나만 있는 산도 있지만, 논과 밭을 안고 사는 산도 있다.

산에도 저마다 역량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많이 사는 산이 역량이 있는 산이다. 그 만큼 물도 많고, 평야도 넓고, 산이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살만큼 좋은 곳이라는 증거이다. 큰 인물을 배출하는 산은 성정이 남다른 산이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듯이 사육신과 같이 지조가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산이 있고, 김만덕 처럼 덕을 베푸는 사람을 배출하는 산이 있는가 하면, 정주영이나 이병철 같이 지혜가 밝아 돈을 잘 버는 사람을 배출하는 산도 있으며, 퇴계나 율곡처럼 학문이 높은 분을 배출하는 산도 있다.

대대로 조선의 왕을 잉태하게 한 북악산이 있는가 하면, 조지훈과 박경리 그리고 박완서와 같은 문장가를 낳은 산도 있고, 을사오적(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을 낳은 산도 있으며 특별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산도 많다.

산에도 지리산과 같이 수백개의 봉우리와 수많은 산줄기와 강과 같은 개천을 거느린 큰 산이 있고, 달랑 봉우리 하나에 제대로 된 능선도 없는 작은 산도 있다.

■산을 구분해 ‘기운’ 살필줄 알아야

산에는 도가적인 접근도 하지만, 풍수에서는 유가적인 접근이 더 자주 통용된다.

산에는 앞(面)과 뒤(背)가 있으니, 산이 등을 보이면 배신할 형상이라고 한다. 산에도 다정함과 무정함이 있으니 서로 앞을 보는 것과 같이 다정함을 좋아한다. 산의 생김새에 있어서도 좌우가 균형을 이룬 방정함을 선호한다. 산의 한쪽이 급하거나 깎여 있으면 성격이 편벽되어 있다고 싫어한다. 산이 날카로우면 성질이 사납다고 하며, 산이 후덕한 것을 좋아한다.


‘산이 충만하면 사람도 비옥하고,

산이 수척하면 사람도 굶주리고,

산이 맑으면 사람이 고귀해지고,

산이 부서지면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생기고,

산이 돌아들면 사람들이 모여살고,

산이 달아나면 사람들도 떠나며,

산이 크면 사람도 용감해지고,

산이 작으면 사람도 비굴해진다.

산이 밝으면 사람도 지혜로워지고,

산이 음습하면 사람도 미련해진다.

산이 다정하면 사람도 효성스러워지고,

산이 배반하면 사람도 서로 속인다.’ <지리신법>


조상들은 이렇듯 산을 중시했는데, 지금 사람들은 산을 보지 않는다. 마치 전기불이 환하여 밤이 되어도 달빛을 찾지 않는 것처럼-. 달이 없으면 모든 생물들이 사라지는 지구가 된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조상들은 산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르는 대상으로, 오락의 대상으로 산을 생각한다. 산을 구분하여 산에서 어떤 기운이 뻗치는지를 알고 그 기운이 어디에서 머무는지를 살필 줄 아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 인문학의 첫걸음이다.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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