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판문점의 판문(板門)이란 널빤지로 만든 대문(널문)이며, 점은 가게 또는 상점으로, 판문점은 널빤지로 만들어진 상점을 말한다. 판문점이 위치한 널문리는, 널빤지로 만든 대문이 많았기 때문에 ‘널문리’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휴전회담의 장소로 북측이 널문리를 제안했고, 중국 측에 소개하면서 ‘널문리 가게’를 판문점으로 표기하게 된다.

한촌(寒村)이었던 이 마을은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부터 국제적인 이목을 끌게 됐다. 이곳에서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이 서명하는 정전협정이 조인됐다. 판문점은 UN측과 북한 측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결정됐는데,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남북으로 분할됐다. 판문점은 포로교환을 위시해 남북한 접촉 및 회담, 왕래지점으로 활용돼 왔다. 어제의 판문점은 서릿바람의 도가니였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었다. 수많은 정전협정위반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려왔지만, 한쪽은 따지고, 다른 한쪽은 무관심하거나 비아냥거림으로 답했다.

■ 분단·대결서 평화·공존의 상징으로

2018년 4월 27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남했고 문대통령과 악수하며 활짝 웃었다. 김정은은 문대통령에게 잠시 함께 월북을 권유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부장관의 승인도 받지 않고 월북했다가 바로 월남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방남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북미는 로켓맨, 미치광이로 서로를 폄하했고, 핵단추 위치와 크기를 자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의 공식석상에서 북한을 파멸시키겠다고 까지 했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도끼만행사건 이후로 가장 높았고, 생존배낭과 비상식량을 준비할 정도로 전쟁에 매우 접근해 있었다.

평창올림픽을 전환점으로 이루어진 금번 판문점 회담과 선언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것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예상 밖의 일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수년에 걸쳐 전 세계를 상대로 핵무기와 미사일 놀음을 벌였고, 한반도를 전쟁위협에 떨게 했다.

그런 김정은이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다시는 전쟁이 없을 거라고 하면서, 화해 이상의 무드를 제공했다.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는 북한의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감을 잡기 어렵다. 또 한 번 시간만 벌면서 다시 도발에 나서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쉽게 떨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누구나 기망을 당할 때 이번만큼은 기망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기망을 당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번은 좀 다르지 않나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그렇게 보여 지는 것은, 첫째, 미국이 가장 강력하게 군사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고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북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상황이며 둘째, 북한이 이대로 가면 침몰할 수밖에 없고 방향을 돌려야 생존할 수 있으며, 향후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고 셋째, 구 소련도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식량(밀)이 없어 백기를 든 것도 중요한 교훈이 됐을 것이다. 넷째 10세도 채 안된 세 자녀의 미래와 자신의 긴 앞날을 바라보며 다섯째, 체제유지를 위해 핵을 개발했지만 경제고립을 자초했고, 경제고립이 다시 자신의 체제를 위협하는 모양이 되다보니,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또 아니라면 북한을 받아 줄 인내심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 기적 같은 기회 결실로 이어져야

금번 판문점 회담은, 1989년 12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간의 몰타회담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이벤트다. 그러니 통째로 나라를 넘긴다느니 위장평화의 쇼라는 일부 야당의 지적은 설득력이 매우 부족해 보인다. 비핵화약속은 있어도 최소한 구체적 행동방안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남겨 놓았을 것으로 선해한다. 또한 북일 정상회담도 이뤄지길 희망한다. 북일 관계가 진전된다면 한국이 그랬듯이(1965년 한일협정), 북한도 과거 청산명목으로 상당한 자금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를 낙후된 인프라 구축과 재건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할 때 한국도 상당한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번 회담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넘어 민족의 통합과 융합에 진정한 시동을 걸었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잘될 거라는 낙관으로 이어지지만 남북문제는 검증단계가 항상 문제였고 말썽이었다. 그러니 설익은 기대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항로에 이제 막 접어든 것에 불과하며, 골프로 치면 첫 번째 홀의 티샷을 마쳤을 뿐이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금번 회담은 누가 뭐래도 문대통령의 끈기 있는 노력의 결실로 보여 진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소중하게 다루어, 한반도와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정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단과 대결을 상징하는 판문점이 평화와 공존의 상징으로 바뀌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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