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9>

  독일인들에게 나치스 시대의 역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이다. 그런데 당시에 건설된 아우토반에 대한 신화는 독일인들의 일상에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그들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독일의 아우토반은 인력과 물자의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거대한 고속도로망이다.

  현재 독일은 미국, 캐나다, 중국에 이어 가장 긴 고속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독일의 고속도로 체계와 시설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다. 이런 고속도로망의 구축에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아우토반이다.

  아우토반을 만든 시기는 일반적으로 히틀러 집권기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독일 최초의 고속도로 건설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를 중심으로 '아부스(AVUS)'라는 회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전용도로의 건설계획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을 위한 장소는 베를린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도로건설을 위한 계획들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담당한 제국철도 베를린 지청이 1911년에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적 개념의 도로건설을 위한 사항들이 벌써부터 고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전을 위한 중앙선과 주행성을 높일 수 있는 깨끗한 도로 표면을 설계단계에서 감안하고 있는 걸 보면 매우 놀랍다. 또 사고 예방을 막기 위해 전 구간에 야생동물과 보행자의 도로 진입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기존의 나무들을 벌목하지 않고 녹지대 조성과 조경작업으로 주변의 자연을 가능한 한 훼손하지 않음으로써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보호한다는 친환경적인 생각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요즘에 와서야 주목받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가치들이 이미 100여 년 전 독일에선 충분히 무르익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설계를 마친 후 1913년 6월부터 1914년 가을까지 완공한다는 목표로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중단되고 말았다. 공사가 재개된 건 전쟁이 끝난 1919년이었다. 자동차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눈뜬 기업가들의 지원으로 건설이 다시 재개돼 2년 여의 공사 끝에 이른바 '아부스(AVUS)고속도로'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아부스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다니기 위한 도로라기보다는 신형 자동차의 주행실험장으로서, 자동차 경주도로로서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 산업의 기술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물자와 사람의 이동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진정한 의미의 첫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는 도로는 아우토반이다. 아우토반의 건설이 시작된 건 나치스가 집권하던 1932년 9월. 그런데 아우토반의 건설계획은 나치스 집권 이전에 이미 존재했었다. 프랑크푸르트 소재의 무역회사 총지배인이었던 호프와 시설감독이었던 올펠더는 이탈리아에 건설된 고속도로 아우토스트리아를 시찰하고 이듬해인 1925년 사회 저명인사들과 자동차전용도로 건설을 위한 협회를 설립했다. 바로 여기에서 아우토반 건설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공항이 몰아닥치고 결국 재정확보에 실패함으로써 도로 건설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 계획에 눈을 돌린 이가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수상에 취임하고 며칠 후인 1933년 2월 11일. 대규모 도로건설계획을 연내에 시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5월 29일엔 경제계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우토반 건설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재확인 하였다. 그리고 8월 23일 역사적인 아우토반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1935년 5월 19일, 프랑크푸르트와 다름슈타트 사이의 구간이 최초로 개통된 이후 1938년까지 장장 3,000km에 이르는 아우토반이 건설되었으며 1942년까지 3,819km가 건설되었다.

  히틀러가 아우토반을 건설한 이유는 군사적 목적이 가장 크다. 그러나 이것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계획이었다. 군대와 보급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이동과 위장이 쉬워야 하는데 사방이 탁 트인 아우토반은 이런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다. 차라리 철도를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오히려 아우토반은 군부의 작전계획에 장애가 됐다. 나치스의 군사전문가들은 콘크리트로 건설된 아우토반이 적의 비행기가 대규모 인구밀집지역으로 접근하는 길잡이 노릇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1937년부터 나치스 정권은 아우토반의 표면을 검게 칠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전후에 독일은 아우토반 확대공사에 나서 총연장 1만 5,0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덕분에 독일의 대부분 지역에서 아우토반까지는 50km이내이다. 다른 나라의 고속도로와는 달리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것도 아우토반의 특징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고 싶은 건 아우토반의 역사나 규모보다 아우토반이 독일 경제에 끼친 영향이다. 전후 독일이 이루어낸 경제발전을 일컬아 '라인 강의 기적'이라 표현했지만 필자는 '아우토반의 기적'이라고 이야기 하고싶다. 특히 아우토반이 크게 기여한 분야는 자동차산업의 발달이다.

  독일엔 유명한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많다.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 비엠더블유(BMW), 아우디(Audi), 폴크스바겐(Volkswagen)등 고급 승용차 생산회사의 국제적인 명성은 우리 귀에도 낯설지 않다. 이런 회사에서 생산하는 승용차의 진면목은 고속도로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무제한으로 달릴 수 있는 아우토반에서 바람을 가르며 안정적으로 고속 질주하는 이들 자동차들의 안전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성장과발전에는 숨은 공신, 아우토반이 있었던 셈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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