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올해 1분기 성적표를 받아든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요즘 싱숭생숭하다. 디스플레이 제품의 성격상 주 수요처인 TV제품의 비수기인 1분기에 실적이 안 좋기 마련이어서 흔한 말로 '보릿고개'라고 하지만 올해는 그 고달픔이 예전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발 LCD(액정표시장치) 폭우로 몇 년 농사를 작파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CEO)이야말로 제일 소회가 복잡할 것이다. 지난 2012년 당시 적자상태이던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을 맡아 같은해 2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끌어 왔건만 다시 적자의 늪에 빠지다니. 경쟁사 경영진은 지난 연말 인사로 새로 취임했으니 실적 악화 부담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여서 더 대비된다.

지난해는 생각하면 할수록 참 '좋은 시절(Belle Epoque)'이었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1분기에 1조26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회사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더니 연간 영업이익 2조4천616억원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만들어냈다. LG그룹의 영원한 맏형 LG전자 연간 영업이익 2조4천685억원과 자웅을 겨뤘다. LG전자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61조3천963억원)이 LG디스플레이 연간 매출(27조7천902억원)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실속경영에선 한수 위였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 또한 깊다고 했던가. 지난해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얼굴이 환해지며 손꼽아 기다렸던 실적 발표가 이제는 자꾸만 피하고 싶어진다. 지난해 3분기 5천860억원을 기록하던 영업이익이 4분기 445억원으로 10분의 1 수준이 되더니 이젠 1천억대 가까운 빨간 숫자로 바뀌어 눈이 어지럽다.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백척 높은 장대 위에 서 있어 더 나아갈 길이 없어 보이지만 용기를 내 힘차게 한 걸음 내딛는다면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다. 한 부회장이 평소 직원들이 호실적에 도취하지 말고 경각심을 갖기를 당부하며 즐겨 인용하던 문구다. 레드오션이 돼 버린 LCD를 떠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매진이라는 백척 장대 위로 올라서기로 한 한 부회장. 회사를 더욱 더 깊은 침체의 늪으로 이끄는 무모한 도박이 될 것인지 권토중래(捲土重來)할 수 있는 '신의 한수'가 될 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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