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10>

  새로운 기록의 경신은 스포츠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세계 곳곳에서 밤낮없이 계속되는 대형 건설사업은 '세계에서 가장큰'. '세계에서 가장 넓은'과 같은 수식어를 수시로 바꿔 달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SOC사업으로는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까?

  우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댐이라 할 수 있는 삼협댐 건설을 들 수 있다. 삼협은 중국 양자강의 한가운데 토막인 200km에 이르는 협곡을 말한다. 구당협과 무협, 서능협 등 세 개의 협곡으로 되어 있다 해서 '삼협'이라고 불린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삼협에는 원숭이의 후손인 야인이 나고 굴원 같은 의인이 났으며, 왕소군과 같은 미인이 났다 하여 '삼협'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촉,위,오나라가 서로 국경을 마주한 삼국지의 무대라 해서 '삼협'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1992년 공사를 시작해 2009년에 완공될 삼협댐의 규모를 살펴보면 높이는 185m, 길이는 2,309m, 너비는 135m이며, 최대 저수량은 390억 톤이다. 이 저수량은 일본 전체의 담수량과 맞먹는 양으로, 27억 톤을 자랑하는 소양호 저수량의 13배가 넘는다. 실로 '물속의 만리장성'이라 할 만하다

  이 양자강에 댐을 건설해 홍수조절은 물론,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신해혁명의 주역인 쑨원이었다. 그는 1919년. 처음으로 댐 건설을 제시했으며 당시의 국민당 정부는 1930년대 들어 타당성을 조사하기도 했다. 국민당의 패퇴로 서랍 속에 묻힐 뻔했던 댐 건설계획은 지난 1954년에 3만여 명의 사망자와 1,900만 명의 이재민을 낸 대홍수를 계기로 마오쩌둥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다.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이 같은 관심은 지난 1958년에 처음 구체회되었지만. 자금력의 부족과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흐지부지됐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댐 건설계획을 다시 거론하기 시작한 이는 지난 1986년 후야오방 당시 총서기였다.

  중국은 이 댐의 건설로 홍수와 가뭄에도 대비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만성적인 전력부족 현상도 해결할 포부를 갖고 있다. 양자강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이 유역을 아시아 제조업의 심장부로 변모시키겠다는 뜻을 세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인 세이칸 터널도 대형 SOC다. 이 터널은 일본의 혼슈 섬과 북쪽의 훗카이도를 연결하는 철도터널로서 쓰가루 해협의 해저부분을 관통하고있다. 세이칸 터널을 구상한 것은 1939년도였지만 건설에 들어가게 만든 결정적이고도 직접적인 계기는 1954년의 태풍이었다. 이 태풍으로 쓰가루 해협에서 선박 다섯 척과 1,430명의 인명 피해를 입은 일본 정부는 안전한 통행수단으로 해저터널 건설을 기획했다. 1964년에 건설에 들어가 10년 정도의 공사기간을 예상했지만 15년 만인 1988년에야 완공됐다 총 공사비 7조원이 투입되었으며 공시가간 중 33명이나 사망한 최고의 난공사로도 기억되고 있다. 터널의 총 길이는 53km이며 해저 구간이 23km이다. 당초 일본의 고속철도인 신칸센과 연계하기로 설계되었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된 상태이다. 이 터널은 지진에 대비한 시공으로도 유명하다. 지진이 발생하면 터널 주변의 암석과 흙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건물이나 다리보다 오히려 안전성이 높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도 큰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 1981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그동안 1천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터널의 노선과 그에 따른 지형.지질 조사는 물론 공법까지 연구해 왔을 정도다.  그 예로 일본연구팀은 지난 1988년 10월 한국에 건너와 거제도에서 지질조사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본의 제의에 대해 우리나라는 터널을 뚫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할 때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이용하려 했던 과거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또 240km의 터널을 뚫는 데 우리나라 1년 국가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10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엔 성사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나라와 나라를 잇는 해저터널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영불 터널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도버 해협 밑을 관통하는 이 터널은 공사계획에서 완공까지 무려 100년이 넘게 걸렸다. 1880년경 영국 도버 해협과 프랑스 칼레 쪽에서 굴착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영국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1987년에 다시 공사에 들어가 1993년 총길이 50km 해저부분 37km의 터널을 완공했다. 이 터널은 철도 전용 터널인다, 자동차 터널인 제2터널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 토목학회가 1996년에 선정한 '금세기 7대 불가사의 구조물'에 이 영불 터널이 포함되어 있다.

  영불 터널은 다른 지역의 해저터널 건설 계획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50km의 철도전용 터널인 지브롤터 터널을 뚫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면 미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30km규모의 철도전용 해저터널인 베링 해협 터널도 논의 중이다. 또 중국과 대만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계획안도 검토중이다.

  세계 대형 SOC사업 중엔 유난히 터널공사가 많다. 터널 역시 넓은 의미에선 도로의 연장선상에 있다. 결국 SOC중에서도 도로나 철도를 닦는 일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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