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경제학 용어 중에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는 말이 있다. 산유국 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는 것이다. 자원보유국에선 국제 원자재 가격이 높아지면 우선 당장 현금 확보가 용이한 자원 관련 산업만 발전하고 다른 부문은 위축된다. 또한 정부는 미래의 자원판매수입을 담보로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 국민들에게 인기영합적인 재정사업을 펼치면서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화된다.

방만한 경제운용으로 대내 재정적자와 대외 무역적자가 쌓이다 보면 결국 대외 채무 지불 불능에 이르게 되고 국가 경제는 급전직하 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그러하듯이 1970년대에도 그 자원의 저주 한 가운데에 있었던 베네수엘라의 석유장관은 석유를 가리켜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통탄했을까.

이런 일은 비단 개발도상국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대항해 시대를 열며 15세기 말엽 일약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던 스페인은 식민지 아메리카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금·은 등 귀금속에 현혹되면서 국가 기간산업이 무너져 내렸다. 산업 선진국의 일원이었던 네덜란드 또한 1959년 천연가스 발굴 이후 가스 산업은 발전하는데 다른 수출부문은 위축되며 1980년대 초반까지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에 시달렸다.

지난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기업경영분석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기업의 매출액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은 한은이 2013년 관련 통계를 발표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등 반도체 업종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제조업 중 석유화학 업종이 수출단가 상승과 글로벌 수요 확대로 매출액이 크게 늘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와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조선업의 부진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반도체는 지난해 우리 경제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한층 강화된 국제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사드발 한한령 공세라는 격랑을 이겨낸 데 큰 버팀목이 된 산업이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자원 가격의 고공행진에 매몰돼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화된 자원의 저주를 거울삼아 다른 부문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방안에 더욱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해 뜨기 전에 가장 어둡듯이 해가 지기 전에 가장 환하게 빛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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