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11>

깨인 생각으로 한 발 앞서간 민족들이 저마다 자국의 도로건설에 주력했던 데서 이젠 한 발 더 나아가 도로도 국제화의 바람을 맞고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중계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 '세계는 하나'이다. 하지만 이 말은 올림픽 중계 때만 실감 나는 말이 아니다. 교통통신의 발달은 '지구촌'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한자어로는 촌(村), 영어로는 빌리지(village), 이 말을 굳이 우리말로 풀면 마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만큼 좁은 공간이란 의미다.

 '지구촌'이란 용어는 캐나다 출신의 저명한 학자인 마셜 맥루한이 처음사용했다. 맥루한은 특히 미디어의 발달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였다. 미디어와 교통통신의 진보, 나아가 인터넷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은 거대한 지구를 하나의 촌락으로 묶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기에 이제는도로가 국가간의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세계는 국가 상호간의 동반 발전을 위해 도로건설망을 구축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른바 도로를 통한 윈-윈전략이다.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도로교통망으로는 크게 아시안하이웨이, 유럽국제교통망, 팬아메리칸하이웨이, 아프리카하이웨이가 있다.

 우선 아시안하이웨이는 한마디로 '제2비단길'이다. 중국대륙에서 유럽을 잇던 비단길처럼 아시안하이웨이는 아시아 각 나라를 연결해줄 것이다. 아시안하이웨이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1959년 국제연합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지금의 UN ESCAP:아시아 태평양지역 경제사회위원회)가 아시아 15개국을 연결하는 현대판 실크로드를 제안하면서 비롯됐다.

그후 아시아 대륙을 육로로 연결해서 국가간의 무역과 관광, 교류를 촉진하자는 취지로 계속 논의 되었다. 1992년 UN의 ESCAP은 새로운 아시안하이웨이 구축을 목적으로 설계기준, 국제교통환경 변화를 감안한 조사연구를 시작해 2004년에 55개 노선 14만km로 구성되는 아시안하이웨이망 정부간 협정이 체결됐고, 2005년 7월 4일부터 효력이 발생됐다. 앞으로 협정내용이 이행이 완료되면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중국, 유럽까지 아시안하이웨이 노선이 표기된 도로 표지를 보면서 달릴 수 있게 됐다. 꿈 같은 일이다.

 아시안하이웨이가 구축되면 아시아 국가간 물적, 인적 교류확대가 기대된다. 또 우리에게는 또 다른 큰 의미를 지니는데 바로 남북도로망의 연결이다. 아시안하이웨이에 포함되는 우리나라 노선을 보면 '일본-부산-서울-평양-신의주-중국' 등으로 연결되는 AH1과 '부산-강릉-원산-러시아(하산)'등으로 이어지는 AH6등 2개(907km)가 있다. AH1은 일본 도쿄-후쿠오카항을 거쳐 페리 노선으로 부산으로 연결되며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평양, 중국등과 이어지고 AH6은 부산에서 동해안 7번 국도를 이용해서 원산 러시아로 이어진다.

그런데 노선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처음에 'Sea link'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해 해저터널의 여지를 남겨두고자 한 것처럼 보였으나, 우리나라의 반대로 결국 'feny'로 바뀌었다.

한일 해저터널 계획은 지금까지 여러번 있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일본 군부의 대륙진출 루트의 일환으로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철도로 연결하려는 계획이 그 첫번째였다. 이 계획은 당시 만주에 보급물자를 수송하고자 했던 것이 그 주요 목적이었다.

두 번째 시도는 1939년, 당시 일본의 국영철도주식회사에 다니던 구와하라에 의한 것으로 이 사람은 세이칸 터널의 입안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 큐슈에서 시작해 한반도-베이징-천산남로-파미르고원횡단-테헤란-이스탄불에서 익스프레스와 연결-도버 해협 터널- 런던에 이른다는 웅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이런 계획과는 별도로 일본의 한 건설회사가 '유라시아 드라이브웨이 구상'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리고 1981년, 아시안하이웨이를 만들자는 제안이 다시 나오면서 한일 해저터널이 또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일본은 해저터널에 여지를 남기고 잌ㅆ는 듯했으나 우리나라로서는 신중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 해저터널이 건설될 경우 부산항을 이용하는 태평양 주변의 물동량이 일본의 고베항 등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염려되는 점이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일 해저터널이 양 국가의 교통수단을 연결하는 차원을 넘어 양 국가의 국토를 잇게 된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해야 했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본이 대륙 진출을 위해 무던히도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한 예가 임진왜란의 원인이 된 '정명가도'다. '정명가도'를 글자 그대로 풀면 명나라를 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길을 좀 빌려달라는 것. 당시 대륙 정벌의 야망을 품고 있었던 일본은 명나라 정벌 계획을 세우는 데 우리나라를 통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본의야심에 우리나라는 코웃음을 쳤다. 미개하고 약한 왜가 어찌 명나라를 칠 수 있겠느냐고 판단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착오였다. 막강한 군사력과 조총까지 갖고 있었던 왜는 명을 공격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어쨌든 우리나라가 길을 빌려줄 것을 거부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먼저 정벌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곧 임진왜란의 발발 배경이 됐다.

이 같은 일본의 야심은 근대에 와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조선을 식민지배한 일제 역시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한일 해저터널 문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결국 터널 대신 페리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최근 중국이 대만해협에 해저터널을 뚫어 베이징에서 타이페이까지 이르는 고속도를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이를 '통도사업'이라 부른다. 중국 당국은 '국가고속도로망 계획'에 바로 이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대만해협을 지나는 노선은 120km 정도., 도버 해협터널 50km, 일본 훗카이도 연결터널 53km보다는 훨씬 길고, 논란이 되었던 한일 해저 터널 예상구간인 250km의 절반 규모다 또한 이 노선은 터널과교량의 종합전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해진다 최근 중국의 놀라운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유럽국제교통망은 하나의 유럽을 향한 각국의 염원이 낳은 결실이다. '하나의유럽'은 1999년 유럽연합 단일화폐인 유로화의 출범을 시작으로 구체화되지만 도로망은 훨씬 이전인 1975년 11월 UN경제위원회의 국제간선도로망에 관한 구주협적으로 구체화되었다.

국제적인 도로망으로 가장 먼저논의된 것은 팬아메리칸하이웨이다. 1923년 제 5회 미주회의에서 미국은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칠레 남부까지 서반구 나라들을 연계하는 총 2만 5,744km의 팬아메리칸하이웨이를 만들 것을 제의 했다.

북미의 미국, 캐나다와 중남미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문화.경제.정치적으로 결합시켜 아메리카 대륙의 연대와 일체감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이 같은 생각은 앞서 1880년대 범 아메리카 철도를 만들자는 제안을 낳게 했지만 1920년대 들어 자동차교통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도로망 건설로 대체됐다.

아프리카 역시 각 나라의 도로망을 하나로 잇는 작업에 들어갔다. 1970년대 초 아프리카경제위원회는 대서양 쪽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서 인도양쪽 케냐의 몸바사까지 7개국을 통과하는 총6,313km의 아프리카 횡단 하이웨이 건설을 결정했다.

이후 아프리카지역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각 나라의 우호증대와 무역확대, 관광사업 진흥을 위해 서아프리카 횡단도로 2개 노선과 동아프리카 횡단 도로, 사하라 횡단도로가 공사 중이고 중앙아프리카 횡단도로도 계획 중이다.

이렇게 각 대륙이 국가와 국가를 잇는 도로의 건설에 힘을 쏟고 있는걸 보면 이제 도로는 한 나라의 인프라에 그치지 않고 지구촌의 인프라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는 것 같다. 이렇게 세계는 국제고속도로망을 구축해 국가간의 장벽도 허물고 공동체적인 발전도 이루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아시안하이웨이 네트워크 구축에 맞춰 지난 30여 년간 쌓아온 도로건설 노하우를 발휘해야 할 때다. 남북도로망 연결뿐 아니라 아시아대륙, 나아가 전 세계 도로망의 구축에 우리의 저력을 보여 줄 때가 됐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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