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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순의 풍수보따리] 고려풍수의 돌풍 ①
   
고려왕조에서 천도를 주장하거나 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자주 나타난다. 고려 중기의 술수가(術數家)인 김위제가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이 됐고, 도선의 풍수도참설을 신봉해 당시 비기(秘記)로 알려져 있던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인용. 남경(한양)으로 천도를 주장했으며, 결국은 남경도성을 건립했다.

고려말에는 십팔자득국(十八字得國) 또는 목자지왕(木子爲王)이라고해 ‘고려가 망하고 이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에 의거해 한양에 오얏나무를 키운 후 도끼로 베어내는 행사가 진행됐으며 그로인해 생겨난 동네이름이 예리동(刈李洞), 번동(樊洞)이다. 풍수도참설(風水圖讖說)도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서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징후를 찾아낸 것에 연유한다.

고려시대의 가장 큰 사건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다. 묘청은 고려 인종의 환심을 얻어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갔으며 도선국사의 풍수맥을 이었다고 주장하며 서경천도를 주장하며 이를 강행하고자 했다.

■외래사상 정착 계기된 ‘묘청의 난’

도선국사의 풍수설화에 드러나 있듯이, 고려는 풍수가 뒷받침돼 나라의 정통성을 부여한 왕조이다. 칼로 만든 나라는 칼로 망한다고 했는데, 풍수로 일어난 왕조는 풍수로 망하는가. 땅을 인체에 비유한 도선국사의 비보풍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백성들의 호응을 얻어 수차례 심한 홍역을 겪는다.

외적의 잦은 침입과 천재지변으로 백성의 생활이 피폐해지자 개경의 지기가 쇠퇴해 왕국의 수도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으로 해석해 지기가 왕성한 다른 도시로 수도를 옮기자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하는 풍수설이 지기쇠왕설이다. 지기도 왕성할 때가 있으며 쇠퇴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고려풍수는 지금의 풍수와는 달리 스케일이 크고, 거시적이며, 나라의 전체를 보는 관점이 발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는 하나의 마을 안에서 풍수를 적용하는 것 보다는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균형 잡힌 풍수학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고로 권력이나 정권의 향배에 풍수를 이용하는 예가 잦았다. 도선풍수의 특징은 일개인의 길흉이나 가문의 성쇠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염두에 둔 풍수학을 펼쳤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천재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조선사연구초’에서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일컬었다. 그 이유는 칭제북벌론(稱帝北伐論)을 내세워 만주를 회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단재 선생은 묘청의 난을 낭불가(郎佛家)와 유가(儒家), 독립주의와 사대주의, 전통문화주의와 외래문화주의의 대립으로 보았다.

자주적 국풍파인 낭가사상 계통으로는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원효, 진흥왕, 김유신, 도선, 왕건, 윤관, 정지상, 묘청( ?-1135), 최영, 세종대왕, 정여립이고, 외래사상이며 사대주의의 근원인 유가의 계통으로는 김부식, 이성계, 정도전, 세조, 성종, 송시열, 이율곡, 이퇴계로 이어진다.

■우리 고유 풍수 편린 찾아 복원해야

묘청의 난을 기준으로 풍류도를 이은 낭불가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사대주의인 유가가 힘을 얻기 시작한다. 이는 고려의 쇠퇴와 조선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려는 태조왕건의 성향을 볼 때 풍류도(고신도)와 불가를 위주로 유가를 두루 포용했다. 특히 도선국사의 비보풍수는 우리나라 고유의 풍류도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것을 비추어 보면 풍류도를 계승한 낭불가가 우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낭불가의 모든 서적과 자료, 신라와 백제, 고구려의 역사서가 시중에서 사라지고 고려의 궁궐도서관에 보관됐을 것이고, 조선으로 이양됐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왕권을 찬탈한 세조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을 억압했고 관련 서적들을 개인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창의적인 낭불가가 전제통치에 불복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므로,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중앙군주통치에 용이한 유교를 대대적으로 펼쳤던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아 궁궐이 불타면서 대부분의 서적들이 소실돼 많은 자료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수학도 사회전방의 사상적인 흐름의 영향을 받고 이를 민감하게 수용하는 학문이므로 자연스럽게 큰 흐름에 동화돼 갔다. 즉, 우리 풍수의 흐름이 외래 풍수의 흐름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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