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12>

  도로건설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해서 뜻밖의 제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 길을 만들 때는 기존의 도로를 팔아서 건설비를 충당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고속도로를 만들 땐 기존의 고속도로를 팔아서 그 돈으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도로국장으로 재임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팔아서 그걸로 다른 고속도로를 짓고, 또 얼마 후엔 그 도로를 팔아서 그 돈으로 다른 도로를 지으면 고속도로를 얼마나 많이 지을 수 있겠느냐"고.

  언뜻 듣기엔 그럴듯한 이야기다. 물건을 만들어 이익을 남기고 팔고, 다시 그 돈으로 물건을 만들고, 또 팔고 하는 식의 논리는 기업의 영리활동에서는 기본이다.

  이제는 행정부의 단체장도 CEO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하는 시대이니, 정말 소매를 걷어붙이고 고속도로 판매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닌가. 하기야 도로를 만들 때마다 자꾸 이익을 남기게 된다면, 그래서 그 돈으로 계속 고속도로를 만들 수 있다면 공들여 예산을 받아낼 필요가 없으니 나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가운데 차량 통행량이 가장 많아 통행료 수입도 가장 많은 곳이니 판다고 내놓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나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고속도로의 통행료 부과는 그냥 엿장수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에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길을 만드는 데 들어간 건설비의 원리금이 상환될때까지 통행료를 받도록 되어 있다. 또 고속도로나 다른 유료도로의 통행료 산정 방식은, 유료도로를 이용했을 때와 그 길을 이용하지 않고 다른 도로로 돌아갔을때 이용자가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 차이, 그 범위 안에서 받게 되어 있다.

  이쯤되면 이런 의문을 제기할 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부고속도로는 원리금을 다 뽑고도 남지 않았느냐"고. 물론 경부고속도로만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경부고속도로야 차량통행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도로, 즉 차량 통행이 적은 유료도로의 경우는 통행료를 비싸게 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문제도 해결하면서 지속적으로 다른 고속도로도 건설해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는 통합채산제를 따르고 있다. 각각의 고속도로를 별도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고속도로 전체를 하나의 노선으로 보는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체 고속도로에 들어간 건설비의 원리금이 상환될 때까지 통행료를 받는다는 원칙이다.

  또 경부고속도로를 민영화 한다면 '통합채산제'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순간 건설비용을 다 뽑은 도로의 통행료를 받을 근거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가운데 알짜 고속도로만 빼서 달랑 팔아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 가운데흑자를 내는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서 몇 군데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알짜 고속도로를 다팔아버리면 여타 도로의 통행료는 당연히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차량의 통행이 아직 많지 않아 흑자도 못 내는 고속도로를 만드는 건 예산을 낭비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논리에 따른다면 차가 많이 다니는 주요 도시 주변에만 고속도로가 생겨야 하고 강원도 산골까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런 반박은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문제가 되는 건, 고속도로를 팔았을 경우 뒤따르는 민영화문제다. 지금까지 고속도로와 관계된 사람은 한국도로고송사가 맡고 있다. 그런데 민영화가 이루어져 민간에서 고속도로를 운영하면 도로에서 파업을 한다거나, 도로 운영을 거부해서 국가기간시설인 고속도로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될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하루 동안 마비된다고 상상해 보라.

  결론적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아무리 비싼 값에 사겠다는 이가 있다 해도 팔 수는 없다. 아니 절대로 팔아서는 안된다. 고속도로는 이익을 남기고 파는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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