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대 명예교수·시인
■ 한국당 몰락, 희생의 가치 망각한 결과
한국당의 몰락은 자기반성과 자기희생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망각한 채 타성에 젖은 결과다. 이는 마치 산불이 지나간 뒤의 잿더미 형국이다. 전멸이라 망연자실할 뿐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앞날이 어둡다. 한 가지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새싹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인재 발굴을 통해서 거듭나는 수밖에 없다. 기존 의원들은 시 ‘까치밥’ 울림을 귀담아 듣고 새싹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
“우리 죽어 살아요. /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 떫은 감도 서리 맞은 뒤에 맛들 듯이 / 우리 고난 받은 뒤에 단맛을 익혀요. /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 새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 쭈구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 이듬해 새봄에 속잎이 필 때 / 흙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 그렇게 몰 흐르듯 순애(殉愛)하며 살아요.”
여기에서 ‘순애(殉愛)’라는 말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가 가야할 길은 여기에 있다. 이 정신이 아니고는 재생할 길이 없다. 보수는 ’죽어서 다시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 산불 지나간 폐허에서 새싹이 나듯이, 2020년을 바라보고 철저하게 재기해야 한다.
■ ‘순애 정신’ 없이는 재생할 길 없어
그동안 풍선처럼 띄웠던 남북평화무드도 무지개가 걷힌 뒤에 다가오는 엄혹한 현실은 보수 야당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보수 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하고 ‘사는 길’로 무장해야한다. 그것은 3·1, 8·15, 6·25를 겪는 동안에 터득한 정신이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이슬같이 스러지겠다는 순국의 정신이다. 죽고자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충무공의 정신이다.
홍윤숙 시인은 시 ‘사는 법 2’에서 후반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형제여 지금은 다친 발 동여매고 / 살얼음 건너야할 겨울 진군 / 되도록 몸을 작게 숨만 쉬어요. / 바람 불면 들플처럼 낮게 누워요. / 아, 그리고 혼만 깨어 혼만 깨어 / 이 겨울 도강(渡江)을 해요.”
이 시는 마치 부상당한 몸으로 일본군에 쫓기는 독립군에게 보내는 격문(檄文)처럼 읽힌다. 이 정도의 각오가 없이 보수는 괴멸을 면할 길이 없다. 죽어서 다시 사는 길이 아니고는 다른 길이 없다. 완전히 타버린 잿더미에서 새싹을 기대하는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보수는 종명(終命)을 피할 길이 없다.
보수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가?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패가망신한 실책이다. 보수는 마치 쓰레기통을 뒤져먹은 고양이처럼 쥐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결국은 그 쥐떼에게 뜯겨 먹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보수는 이 나라를 있게 한 주요 인물들을 지키지 못했다. 보수는 화신상담, 쓸개를 핥아야 한다. 그리고 6·25에는 개떡을 먹어야한다. 유대민족이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듯이 6·25에는 보리개떡을 먹어야한다. 보수 한국당은 홍윤숙 시인의 시 ‘사는 길’처럼 독립군의 심정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최대한 낮추며 엄동설한 빙판길 목숨 걸고 도강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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