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13>

  일본에는 '도로족'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는 어떤 특정 분야의 정책에서 정통해서 그 분야의 정책입안에 강한 영향력을 갖는 자민당 정치가들을 곧잘 '족'이라 부르고 이 '족'에 속하는 의원들을 '족의원'이라고 칭한다.

이를테면 공공사업에 영향력이 큰 건설 분야에 입김이 센 정치가들은 '건설족' 혹은 '도로족'이라 부르고, 의료 및 복지 정책에 영향력이 큰 의원들은 '후생족'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세제에 영향력이 큰 '세제족'도 있다.

  이 '족'의 시조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으로 알려져 있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은 1976년에 이른바 '록히드 사건'으로 체포돼 구속된 인물이다. 록히드 사건이란 미국의 군수업체인 록히드사가 일본정부의 고관들에게 뇌물을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의 혐의는 전 일본한공에 록히드사의 항공기를 구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5억엔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가, 고위급 관료, 대기업이 제각기 이익을 챙기려는 정경유착이 빚은 스캔들이었다.

  일본의 많은 '족'들 중에서도 '도로족'은 단위가 큰 특정 도로의 재원을 배당받을 수 있어 도로와 관련된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4년, 우리나라 언론에 느닷없이 '도로 마피아'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건설교통부 도로국 출신 공무원들이 정치인이나 토목업자와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집단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다'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렇다면 도로국의 모든 과장을 거쳤고, 도로국장직에 2년 5개월이나 재직하고 있던 필자는 마피아 두목이 되는 셈이 아닌가.

  도로 정책의 수립이나 예산편성 과정에서 정치인이나 건설업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한 사실도 없고, 집단 이익을 추구한 적이 결코 없는데도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걸까. 아마도 도로건설이 다른 분야에 비해 활성화 되고 있는 데 대한 질시도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도로가 짧은 시간안에 너무 많이 건설되었을 뿐 아니라 일부 국도가 고속도로처럼 지나치게 고급화된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도로건설은 현재의 교통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 만든 도로에 자동차가 꽉꽉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 만들었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도 앞으로 많아질 것에 대비해야 하는 게 도로정책의 기본이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도로정책은 정어도 20년대계는 되어야 마땅하다. 도로계획이론이나 세계은행 등에서 쓰는 국제기준을 참고하면 '도로의 규모와 차선 수를 결정하는 기준은 현재의 교통량이 아니라 20년 후의 하루 평균 교통량'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도로축적도는 아직 선진 외국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교통애로구간은 3,000km를 넘고있고, GDP 대비 물류비용은 12%수준에서 줄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도로를 더 건설해야 한다.

  자고 나니 갑자기 유명해진 게 아니라 하루아침에 마피아 두목이 되어버린 나. 이 '도로마피아'라는 말을 들으면서 묘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도로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최고의 도로를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느 한 분야가 잘되면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이 들려오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하루아침에 도로 마피아의 두목으로 둔갑한 일도 역시 그런 해프닝의 하나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는 마피아 두목이 아니라 인프라 두목이라고.' 진정으로 내가 되고 싶은 건 인프라 두목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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