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15>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M.G 마르코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재의 불가능이 오늘의 가능이 되며 지난 세기의 공상이 지금은 현실로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실로 무서운 것은 인간의 노력이다."

  이 말은 도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불구불 산길이었던 곳에 시원한 고속도로가 뚫리고, 이곳저곳에 거미줄 같은 도로가 놓여 도시의 모습이 바뀌곤 하니 말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주듯이 도로 또한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도로 건설로 우리 국토의 모습이 가장 많이 바뀐 것은 1960년 말부터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 시절, 우리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경제발전을 이루어 가난에서 탈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인프라, 그중에서도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렇게 해서 번갯불에 콩 볶듯이 만든 도로가 경부고속도로이다. 428km나 되는 도로를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만 2년 만에 건설해 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토지 수용 문제나 완벽한 설계 시공 등 도로건설의 절차가 훨씬 까다로운 지금이라면 설계만도 2년은 족히 걸리리라. 이렇게 만들어진 도로는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이렇게 도로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기원전 3세기 고대 로마인들이 길을 만들 때 만리장성을 쌓았던 나라. 그런 만큼 토목기술 또한 뛰어난 대국이었지만 사회주의 체제는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열어주지 못했다.

  그런데 개방 후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중국이 가장 주력한 것은 도로를 닦는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의 도로발전을 부러움 반, 놀라움 반으로 바라보던 중국은 10년 전 베이징-상하이 고속도로와 베이징-텐진 고속도로 건설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10년 동안에 무려 3만km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2002년 한 해에 건설한 고속도로만도 5,693km.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총 연장이 현재 약 3,000km라는 걸 감안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건설한 고속도로의 두 배를 한 해에 만들었다는 경이로운 계산이 나온다.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배워서 시행하는 도로정책도 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청사진은 '7X9 고속도로망'으로 남북으로 7개 축, 동서로 9개 축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완성되면 2020년엔 6.502km의 도로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고속도로는 5.946km, 국도는 556km이다.

  중국도 이런 마스터플랜을 벥치마킹해서 남북으로 13개 노선, 동서로 15개 노선의 고속도로망을 확충하는 '13X15 플랜'을 세워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른다면 2020년까지 13종 15횡의 10만km 고속도로망을 완성할 것이라 한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5종 7횡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엄청난 규모의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중국에 비해 한발 늦기는 했지만 인도의 경우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뉴델리-뭄바이-첸나이-콜카타-뉴델리를 연결하는 총 5,846km의 황금사변형고속도로를 완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고속도로망의 확충에 드는 비용은 14조원.

그런데 세계은행은 이 프로젝트로 인도가 매년 2조원을 절약할 수 있을 거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대로만 된다면 7년 이면 건설비가 빠지는 셈이다. 하기야 이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과거에 3,4일은 걸리던 델리에서 콜카타까지 하루밖에 안걸린다고 하니,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예상된다. 도로를 닦는 일은 돈을 쓰는 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일인 것이다. 또한 인도는 1만 3,146km에 이르는 3개의 초장거리 고속도로를 포함해 6만 5,000km에 달하는 전국의 도로를 재정비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고속도로 건설이 쾌속질주한 건 아니였다. 트럭운전사들은 통행료 징수에 저항했고, 시민들은 가축의 이동통로를 요구하며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기도 했다. 나무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들이 길 닦는 일을 방해하면, 이슬람교도들은 밤에 몰래 나무를 베어내기도 했다. 계획된 노선 위에 수만흥ㄴ 종교기관이 있어 노선을 바꾸기도 수십 차례였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인도는 '고속도로 혁명'을 이루고 있다.

  도로가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의 견인차 노릇을 하는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시설이라는 것을 생각 할 때 도로기술자들의 자부심과 사명도 남달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선진국이나. 다른 나라의 발전된 도로기술이나 제도와 관련된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야한다. 1996년부터 중국, 일본, 미국, 인도네시아와 매년 정기적인 도로교류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같은 교류를 통해 도로분야의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성과를 공유하며 기술협력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나라와의 교류에서는 각국의 도로현황과 계획, 특수교 설계와 같은 우수한 공법, 관리 신기술, 교통관리체계, 도로안전시설, ITS, 유료도로, 시민참여방안, 건설행정등 다양한 내용을 의제로 다루고있다.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세계 82개국이 참여하여 도로기술과 정보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도로연맹(IRF), 세계 65개국이 참가하는 상설국제도로회의협회(PIARC), 도로 및 교통 관련 분야별 정책과 최근 연구과제 등에 대해 논의하는 교통연구협의회(TRB)등에도 참여하여 각국의 도로시설과 교통관련 전문정보, 기술동향 등을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교류와 협력으로 얻은 성과들을 우리의 도로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에 보면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내용이 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늦추어선 안 된다' 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요즘 일류기업들도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초일류기업의 선진 경영전략을 배우고 벤치마킹한다. 이런 노력들은 기업경영에만 유효한 건 아니다. 도로분야도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할 때만이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내는 진정한 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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