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지디엠컨설팅 신창인 대표
[일간투데이 김영호 기자]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기업들이 많아졌지만 한국에서 ‘국제협상’이란 불모지와 같다. 이런 상황에 최근 국내서 최초로 국제협상대행서비스를 론칭해 눈길을 끄는 기업이 있다. 한국내 국제협상 및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지디엠컨설팅의 신창인 대표를 만났다. 그는 백악관 북핵협상준비팀 외부전문가, 하버드법대협상연구소 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대외협력팀장 등 굵직한 커리어를 갖춘 국제협상 전문가다.

- 전공을 협상 분야로 정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나니 앞길이 막막했다. 행시를 볼 것도 아니고 취업도 안돼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평소에 관심있던 저널리즘을 공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중도에 포기하고 좌절하고 있을 무렵, 뉴욕주립대학원에 커뮤니케이션학을 포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때 커뮤니케이션학의 원로 거장이신 플로이드 앤더슨(Floyd Anderson) 교수를 만났다. 앤더슨 교수와의 첫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에서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앤더슨 교수는 “현재 세계는 글로벌화가 시작됐으니 넌 국제협상을 전공하면 스타가 될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앤더슨 교수와의 인터뷰 후 말성임 없이 전공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꿨다. 1년 반만에 석사학위를 취득하자 앤더슨 교수는 ‘커뮤니케이션학이 유명한 펜실바니아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게 어떻겠느냐’며 추천서를 써 줬다. 거기서 또 다른 거장인 토마스 벤슨(Thomas Benson) 교수와 스테판 브라운(Stephen Browne)교수를 만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 인생을 바꾼 것은 박사과정 3년차에 하버드법대협상연구소(Program on Negotiation at Harvard Law School)의 박사과정장학생으로 선발돼 하버드법대에서 수학하게된 것이었다. 여기서 협상학의 대가 윌리엄 유리(William Ury) 교수를 만나 연구에 전념하게 됐다.

- 백악관 컨설턴트인 윌리엄 유리 교수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유리 교수와의 만남은 운명과 같았다. 나는 당시 동양학생으로 처음 PON Graduate Research Fellowships 장학금을 수상한 케이스라서 연구소내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유리 교수는 내가 연구활동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여러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PON 장학금은 협상을 연구하는 박사과정학생들의 논문 프로포절 경시대회다. 매년 3~5명씩 장학생을 선발해 박사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한다. 생활비는 물론 커리어에 필요한 모든 학문적·물질적·행정적인 보조를 해준다. 또한 매월 개최하는 패컬티 미팅(faculty meeting)에서 연구한 것을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해준다. 이 당시 PON에서 협상학의 거장인 로저 피셔(Roger Fisher)를 만났다. 피셔 교수는 평소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종종 연구실에 들러 의견도 주는 등 내게 신경을 많이 써 줬다.

수많은 교수를 만났지만 이 중에서도 유리 교수와는 인연이 깊다. 그는 2000년 창시한 ‘공동체협상’(Third Side)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당시 우리 연구원들에게 연구비를 주고 용역을 맡겼다. 이때 나는 북미간 핵무기협상을 연구했다.

-최근엔 유리 교수와 백악관 협상 컨설팅에 나섰다고도 들었다.

유리 교수와의 인연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올해 6월의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 컨설턴트로 초빙됐다. 나도 그가 이끄는 북핵협상준비팀에 외부전문가로 초청돼 북핵협상 준비과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전 작업은 2017년도 10월 중순 콜로라도에서 2주간 워크샵으로 운영됐으며, 미국 전역의 협상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북핵협상에 관한 로드맵을 구상했다. 이후 모든 팀원들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전략을 구상해왔다.

북한과의 협상은 미국내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처음엔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소수의 정예 멤버만 정보를 공유했으며, 각자 자신들의 전문분야 연구를 준비해 정보를 교환했다. 이후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팀리더가 유리 교수님한테 최종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북미회담에 관한 국내외 회의론이 무성하던 지난 4~5월은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대북협상전략을 짜는 우리조차 한치 앞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분석한 대북 협상전략’에 관해 연구 발표했으며, 다른 팀원들과 공유하며 준비과정을 함께했다. 그래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성공리에 개최된 북미정상회담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큰 이정표가 됐으며, 내가 협상을 전공하게 된 운명의 이유를 설명한 셈이 됐다.

- 세계 ‘최고’와 함께 하던 현장에서 벗어나 국내로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2007년도의 어느 여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Preventive Defense Project at Kennedy School)의 디렉터이자 전 국방부장관인 애쉬튼 카터(Ashton Carter) 교수가 주최한 북핵관련 비공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웬디 셔먼(Wendy Sherman) 등 한반도 안보관련 인사들이 총출동한 자리였다.

20여명의 인사들의 발표가 끝나자 좌장을 맡은 카터 교수가 북한의 핵위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핵무기사용도 불사해야한다는 말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참가자들이 모두 동조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남의 나라 얘기지만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낼 수도 있는 시나리오에 눈하나 깜짝 않고 냉정하게 얘기하는 그들을 보며 정이 뚝 떨어졌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당시 나는 Davis Center for Russian and Eurasian Studies소속이었고 마크 크래머(Mark Kramer)교수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고 도와줬지만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왜 한국은 이런 운명에 처한 나라일까’ 하는 좌절감이 몰려왔다. 또 나는 왜 한국사람인가 하는 자괴감도 몰려왔고, 그 와중에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찼다. 그래서 그토록 사랑했던 케임브리지를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 처음 지디엠 컨설팅을 설립 후에는 국제협상 교육에 힘쓴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 교육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

한국에 귀국한 이후로는 내가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에서 오퍼가 왔을 때에도 무조건 수락하고 국제업무와 글로벌 이벤트를 총괄했다. 하지만 머리속에는 온통 협상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디엠 컨설팅을 설립하고 협상 컨설팅, 교육 및 트레이닝에 전념했다. 한국이 국제관계에서 괄시를 받고 협상력이 없는 것이 전문적인 교육과 트레이닝을 통해서 제고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관들이 교육을 받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한국기업들 및 정부기관들은 당장 국제협상을 해야 하는 급박한 실정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평소 인연이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협상대행서비스(WeNegotiate)를 론칭하게 됐다. 이 서비스는 하버드법대협상연구소 동료이던 Josh Weiss 박사가 함께 한다. 그는 나의 비젼을 믿고 후원해주었으며, 기꺼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물론 우리는 협상 컨설팅, 교육 및 트레이닝 서비스도 병행한다.

- 향후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국제협상이란 국제비지니스의 꽃이다. 문화권이 다른 국가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다난한 과정이다. 여기에 언어나 문화간의 차이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이며, 효과적인 협상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협상가 개개인들의 능력 및 자질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중요하다.

내가 유리 교수에게 배운 것 중에서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긍정의 에너지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찼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셨다. 그런 에너지는 바로 그의 믿음에서 온다. 즉, 어떤 갈등도 대화로서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도 그의 가르침을 본받아 국내외 산적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 진정한 협상가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때 그 소임을 다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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