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반도체는 그동안 우리 수출의 효자노릇을 하던 다른 산업부문이 부진한 가운데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조선산업은 2010년대 초반 얼마간 호황을 누리는가 싶더니 셰일가스 발굴로 인한 저유가 국면을 맞아 몇 년째 침체상태다. 소형차를 중심으로 쾌속 질주하던 자동차는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하자 급정거한 모양새다. 특히 올해는 중국발 LCD(액정표시장치) 공급 과잉으로 디스플레이산업마저 나가떨어지면서 반도체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외형상 반도체는 올해 3분기에도 순조로울 전망이다. 삼성전자·애플 등을 위시한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하반기 신제품을 출시하며 모바일 D램 제품 수요를 끌어올리고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의 대규모 인터넷센터(IDC) 구축을 위한 서버 D램 수요가 견조하기 때문이다. 내년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로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차 등 4차산업혁명기술이 본격화되면 관련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4분기 이후 전망에는 서서히 암운(暗雲)이 깃들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숙과 고사양화에 따라 모바일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예전만 못하고 '반도체 굴기(崛起)'를 외치며 매섭게 추격해 오고 있는 중국산 메모리 제품이 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잠식할 것이라는 예상때문이다. 갈수록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글로벌 수요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국내기업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7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 오는 2020년까지 3조5천억원 이상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생산 라인을 증설한다는 발표를 한 데 이어 삼성전자 또한 그동안 수익성 전략에 따라 줄어든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고자 '치킨게임'도 불사하는 공세적인 투자 확대를 진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2000년대 중반 치킨게임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확보한 국내 기업들이 이번 치킨게임에서도 치밀한 전략과 실행을 통해 후발 중국업체의 추격을 뿌리치기를 기대해 본다.
이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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