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금융혁신 위해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진보 시민사회, 재벌 대기업 사금고 전락·국민경제 부실 우려

▲ 정부·여당이 금융산업의 혁신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銀産分離·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해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제도)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진보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의 인터넷 전문은행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정부·여당이 금융산업의 혁신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銀産分離·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해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제도)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진보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다.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가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는 것은 고사하고 은행이 재벌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길을 터 줘 국민경제의 동반 부실을 불러온다는 비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추혜선(정의당·비례대표)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공동으로 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천만계좌의 예금, 재벌 금고로 들어가나'라는 주제로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첫번째 발제를 맡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은 '경제력 집중 관점에서 은산분리 규제의 필요성'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지난 2013년 동양그룹 회사채사태 사례를 보면 동양증권 등 금융계열사가 재벌의 사금고가 돼 그룹내 비금융 계열사의 CP(단기 기업어음)와 채권 1.7조원을 매각함으로써 약 5만명의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입었고 그룹 전체는 부실화되면서 해체됐다"며 "동양증권이 증권사가 아니라 은행이었다면 동양그룹 사태는 특정 재벌의 몰락에서 끝나지 않고 국가 전체 금융 및 경제위기를 야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카카오뱅크가 자본확충에 성공적이었던 것에 반해 K-뱅크가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은산분리 규제 때문이 아니라 가계신용대출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카카오뱅크의 사례를 보더라도 은산분리 규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과 무관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핀테크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우 잘못되고 왜곡됐다"고 반박했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K-뱅크 사례를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 주장의 문제점'이라는 발제를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빅데이터·블록체인 기술 활용 등에서 기존 은행과 차별적이지 않고 ▲K-뱅크가 300명 미만을 고용한다는 점 ▲인터넷전문은행이 고신용 가계대출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4차산업혁명·고용창출·중금리 대출 활성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 정부·여당의 규제완화 설득의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K-뱅크는 매 분기 200억 내외의 손실이 쌓이면서 BIS 자기자본비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반면 K-뱅크의 최대주주로서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3.78%를 보유 중인 우리은행 또한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난항을 겪으면서 추가 출자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통해 산업자본을 이용해 K-뱅크 자본확충을 한다면 이전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인 인터넷전문은행 부실문제를 문재인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꼴"이라고 성토했다.

권영준 한국뉴욕주립대 경영학부 교수(경실련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 분리 규제 완화를 하면 추가적으로 지점 설치를 요구하며 사실상 일반은행이 될 것"이라며 "ICT 산업자본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하면 궁극적으로 재벌대기업의 은행산업 진출의 길을 터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주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위원장(변호사)은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은 대체로 은산분리규제를 유지하고 있고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해서 특별한 규제 완화를 하고 있지 않다"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8년 키코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증권 사태 등 대규모 금융소비자피해가 반복됐음에도 금융감독당국은 그 피해예방이나 사후 수습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집단소송제도 도입에는 소극적인 채 다시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꺼내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회계사) 또한 "K-뱅크가 1대1의 비율로 보통주로 전환 가능한 전환주의 전환 청구 기간의 종기를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상호출자기업집단을 포함)가 인터넷은행의 최대주주가 되는 것이 허용되도록 인터넷은행의 주식보유한도와 관련한 법령이 개정돼 시행 되는 날로부터 2년이 되는 날' 등으로 설정한 것은 사실상 은산분리가 폐지될 것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셈"이라며 "인가시점의 K-뱅크 주주 21개사의 2016년과 2017년 감사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출자여력이 무리로 판단되는 경우가 허다해 애초의 심사과정이 졸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내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대한민국이 바뀐다-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을 찾아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활동 사례를 청취하고 전시부스를 관람, 시연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는 금융혁신과 경제활성화를 촉진할 것"이라며 "은산분리의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해 혁신 IT 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줘야 한다"며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또한 "금융위가 인터넷전문은행과 함께 핀테크·빅데이터 산업이 유기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전반적인 금융 혁신을 더욱 속도감 있고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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