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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황종택의 直問卽答] 김시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 "순국선열 행적 담은 '앱' 만드는 것이 목표"희생정신 후세에 전하려면 선조 열사들 위상 정립부터…
50만 후손 국가차원 조사 전무 제대로 된 건국공로 평가 없어

‘순국(殉國)’,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은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하다. 개인 영달이 아닌 공의(公義)의 삶이기에 그 족적이 빛나는 것이다. 

“온 겨레 나라 잃고 어둠속 헤매 일 때 자신을 불살라서 횃불마냥 밝히시며…/ 오롯이 목숨 바친….” 순국선열을 우러러 기리며 부르는 ‘순국선열의 노래’ 한 구절이다. 순국선열들이 변치 않는 굳센 의지로써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어떻게 살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후세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8월15일은 광복절(光復節)이다.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위훈을 기리기 위한 광복절이어야 한다. 그 분들의 삶은 일제의 손에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 희생에 힘입어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개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우리 가족,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우리 인류가 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분들의 생애를 통해 알아야 하고 우리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김시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독립관 지하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이런 취지에서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김시명(金時明·72) 회장의 삶 또한 공의(公義)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간들로써 점철돼 있다. 김 회장은 1946년 경북 안동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인 김필락 선생(1873~1919)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3월 21일 안동 천지시장에서 만세를 주동, 시위군중을 이끌고 천지주재소에서 일제경찰과 대치하다 총에 맞아 순국했다. 같이 행동대원으로 따라나선 조부는 경찰에 잡혀가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젊은 33세에 숨졌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듯이 증조부와 조부가 모두 순국한 김 회장의 집안이 좋을 리 없었다. 그의 부친 역시 빈곤에 허덕였고, 김 회장 역시 중학교조차 진학하기 어려웠다. 그는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지만 진학을 포기했다가 뒤늦게 극빈자 전형으로 겨우 중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덕택에 안동농림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하고, 또 1등으로 졸업한 덕분에 대학(건국대)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ROTC 8기생으로서 문무 겸비한 장교로서 조국애를 실천한 경륜을 쌓았다. 김 회장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있는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나 순국선열정신 선양과 보훈 과제 등에 관해 들어 보았다.

- 순국선열유족회장을 맡게 된 계기를 소개해주시죠.

▲ 제 가계가 말해주듯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군 전역 후 직장생활을 하다 골프관련 기계 사업을 하면서 형편이 좀 나아졌습니다. 그제야 증조부와 조부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조상 앞에 가서 신고를 하는데 두 분 모두 나라에 목숨을 바쳤기에 제가 나중에 죽어서 조상 앞에 무릎 꿇고 "우리 애들 잘 먹여 살리다 왔습니다" 정도로 보고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왜 두 분이 나라에 목숨을 바쳤나 알아보려고 2012년 스스로 유족회를 방문했습니다. 

몇 번 찾아 와보니 유족회의 실상을 알게 됐습니다. 이곳은 제 생각과 달리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순국선열 후손이 50만명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 숫자 또한 국가가 한 번도 조사를 하지 않았기에 정확하지 않습니다. 순국선열 후손들이 몇 명인지, 어떻게 사는지 조차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후손 중 저 만큼 형편이 나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 실상을 알고서 제가 회장직을 맡는 수밖에 없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2014년 4월 10일에 취임을 했고 임기는 3년으로 지난해 2월 재임했습니다. 


- 호국보훈의 의미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 국가에 공이 있으면 우리나라는 두 가지로 서훈을 합니다. 하나는 건국하기 위해 공이 있는 분들 '건국훈장'을 주고, 나라를 건국한 뒤에 보호했던 분들은 '보국훈장'을 줍니다. 건국훈장은 순국선열 및 독립운동가가, 보국훈장은 6.25참전용사나 베트남참전용사 등이 받습니다. 세계적으로 건국공로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만 우리니라는 6.25 및 베트남참전용사, 4.19 및 5.18희생자를 위한 날로 협소하게 변질된 게 안타깝습니다. 

-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선 순국선열의 위상 정립부터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 유족회에 와서 보니 돈이 없어 순국선열 제사도 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청와대를 방문해 순국선열 제사에 쓸 수 있도록 2억 정도 줄 것을 진정서를 냈습니다. 1억은 제사를 지내고 1억은 <월간순국>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나라사랑정신을 일깨우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냥 달라고 할 수 없어 저의 개인 재산 1천만원을 보태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예산이 없어 돈을 주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후 순국선열애국지사기금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예컨대 2008년을 살펴보면 순국선열에게 1억6천백, 애국지사 47억이 집행됐습니다. 순국선열을 위해 마련된 기금임에도 불구하고 약 3%만 순국선열 후손들에게 돌아간 셈입니다. 

 

김시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이 "내년 3·1운동 100주년때 순국선열의 행적마다 비석을 세우고 싶은 포부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 정부와 사회단체 등이 교육과 예산 등에서 시급히 해야 할 우선 과제를 드신다면? 

▲ 유실된 자료 복원과 외교적 협력, 후손 교육 등을 위한 인·물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특히 사라지고 중국화 돼버린 자료들을 복원해야 합니다. 일본에는 우리 독립운동 사실이 기록으로는 있지만 일본에서 독립운동이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대부분 중국과 만주 등에서 이뤄졌습니다. 그 유적들이 지금 거의 멸실돼가고 있습니다. 

내년에 3.1운동 100주년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순국선열의 행적마다 비석을 세우는 일인데, 이는 중국과 정치 외교적 문제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좌표를 표시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곳이 어디인지, 순국선열이 무엇을 했는지 표시를 해놓을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정부의 예산이 따르는 일이기에 국가보훈처에 제안하고 있으나 잘 안 되고 있습니다. 

- 3.1운동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계시는데요.

▲ 2020년을 목표로 하는데 호응이 좋습니다. 3.1운동을 주도 한 순국선열 3천458명의 사망 일자를 평균화하면 1919년도입니다. 3.1운동을 중심으로 순국선열들이 활동하고 돌아가셨음을 의미합니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인 동시에 순국선열 서거 100주년입니다. 남북관계가 잘 풀린다면 언젠가는 북한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김 회장의 좌우명은 '언행여선(言行如線)'이다. 말과 행동이 하나의 선처럼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관성이 없으면 남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기에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그는 순국선열 정신은 정권이나 시대와 상관없이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다며 “순국선열을 호국정신, 국민정신의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교육하는 데 순국선열유족회가 앞장설 것이라고 다짐하는 김시명 회장의 표정에 소명감이 가득했다. / 황종택 주필, 정리=임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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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 주필 resembletree@naver.com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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