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원 화백·자연정신주의 창시자

더운 날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하늘에서는 불이 쉼 없이 내려오고 달궈진 땅에선 뿌옇게 수증기가 되어 매 순간 마다 아지랑이와 신기루로 변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 여름을 혼미하게 만드는가?

40도의 경계선 같은 바를 밟았다 떼고, 분명 어린애들 게임놀이는 아닐 텐데 모든 생명들이 아파한다. 큰 산 계곡 깊은 골짜기에 그 자리도 온탕의 열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온몸에 물이 흐른다. 모든 사람의 얼굴엔 하이얀 또는 빠알간 그리고 정신이 바로서지 못한 몹시 혼미한 그 무언가에 사로잡힌 물체처럼 보인다.

이 여름은 그의(여름) 힘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땅을 달구고 논바닥은 갈라지며 곡식과 과일 열매들이 타고 있다. 채소가 자라지를 못하고 농부의 얼굴엔 그 누가 죽었는지 슬픈 모습에 보는 이의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 자연은 늘 상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알아듣지 못함은 뭇 생명들이지 자연의 실수는 아닐 것이다. 당연히 다시 저만치 가을이 와 서성인다. 올까 말까 이 여름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말이다.

■ 온갖 생물들 자연 질서에 순응

그리고는 아니 오늘 저녁 바람이 선선하다. 모든 물상들의 마음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저마다 어젯밤 잠 잘 잤단다. 많이들 즐거워한다. 행복의 이름이 빛나 보인다. 세상을 본다. 우리는 그랬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면서 배우고 일하며 사랑한다. 차를 몰아 교외로 갔다. 조생 벼는 벌써 익어가고 가을 과일들도 생존의 법칙에 고마워하며 주렁주렁 열매자랑을 하고 있었다.

지성을 쌓고 지혜를 모아 더 나은 우리들의 삶의 가치를 그리며 그길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은 고추잠자리가 야생화 꽃 위로 새로운 댄스를 선보인다. 새로 개발한 춤이란다. 세 바퀴 공중선회 다시 수평 날기에 직선상승이다. 픽픽 예쁘다. 가까이서 보고 있던 고추잠자리 암놈이 미소 지으며 오고 있다. 분명 좀 있으면 사랑 노래 듀엣으로 부를 것이다.

자연은 그랬다. 저녁 무렵 집에 오는 길에 그렇게 맑지 않은 매미 소리를 들었다. 힘이 없다. 이제는 석별의 시간을 조절하고 있는가? 그렇다 온갖 생물들은 대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만이 탐욕과 오만과 위선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일까. 다 얻고 소유하고 있으면서 만용과 객기를 부리고 자연의 질서를 교란과 파괴를 일삼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밝혀진 대로 에너지 과소비가 결정적 요인이란다. 지구의 온도 조절기능인 얼음과 눈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 인간만이 탐욕에 지구를 병들게

종이 이미 사라지고 있다. 뜻 있는 자들의 경고다. 지구 온도 5도 이상 기온상승에는 모든 생명의 생존이 어렵다고 한다. 10년 전 우리나라 33도 여름에 지인들 몇몇이서 우리나라권도 40도정도 올라갈까라는 토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2018년 여름이 그랬다. 보았으며 체험을 했다.

잠 못 이루는 날들, 잊지 못할 여름에 많이 울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위대한 발자취’인지도 모르겠다. 탄소 배출의 그룹대상을 수여한 인간 종, 뭇 생명들의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오늘도 여전히 실내는 차갑고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공기온도는 과연 몇 도일까? 실외기 앞을 지날때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라인 바의 경계선을 지날 때 숨을 쉬지 말아야한다. 무서운 일이다.

어렵게 저지선을 지나 고개를 들었더니 대추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 뽀얀, 탐스런 열매를 보면서 모든 걱정을 잠시 잊고 있을 때 선선한 바람이 뺨을 때린다. 피부가 반가이 맞이한다. 오랜만의 상쾌한 바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둔감해진 멘탈이 다시 깨어나야 한다. 항상 그랬듯이.

하나뿐인 지구, 이 구슬이 도시의 낙후성을 말하듯 달동네로 방치할 것인가. 수준 낮은 지구. 격조 있는 화성 지혜를 모은 그들은 신천지에 산다. 오염된 지구 달동네에 사는 우리는 미래가 과연 없는 것인가? 위기의 지구를 손 놓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정녕 치유할 수 없는 것인가? 야! 모두 잘 들어 행동해. 어떻게?

/ 오준원 화백·자연정신주의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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