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에 나타난 괴물 기록, 전후를 함께 살펴본다

 

중종 6년 5월 9일 무오 1번째 기사. 사진=조선왕조실록/국사편찬위원회

[일간투데이 정우교 기자]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이한 기록들이 있다. 

「밤에 개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명하여 몰아서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후략)」 <중종실록 13권, 중종 6년 5월 9일 무오 1번째 기사 中>

개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전혀 보지 못한 짐승, 이 기록에 적혀 있는 ‘개같은 짐승’은 어떤 동물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사한 내용은 중종실록 59권, 73권에도 적혀 있다. 

「삼가 살피건대 근일 궐내에서 숙직하던 군사가 괴물이 있다는 헛소리를 전하자, 한 사람이 부르면 백 사람이 부동하듯이 휩쓸렸습니다…(후략)」 <중종실록 59권, 중종 22년 6월 25일 경오 4번째 기사中>

「어떤 자가 망령된 말로 '말(馬)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하자, 금군들이 놀래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웠다」 <중종실록 73권, 중종 27년 5월 21일 무진 3번째 기사 中>

두 기록에서 '괴물'이란 단어는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시간 순으로 기술한 조선왕조실록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 단어를 바탕으로 현 시대에서는 다양한 창작물로 활용되고 있다. 다음달 13일 개봉하는 배우 김명민 주연의 영화 ‘물괴’ 뿐만 아니라 4년 전에는 '단장'이라는 웹툰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기록에 등장한 '괴물'을 '사실'이라고 여기고 저마다 시각화시켰다. 하지만 진위여부는 잠시 미뤄두고 지금부터 기록이 작성된 전후 상황을 되짚고자 한다. 

 

영화 물괴 스틸컷. 사진=네이버영화,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트

 

■ 중종은 어떤 왕이었나 

우선 중종이 어떤 임금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종은 1506년 연산군을 폐위한 중종반정으로 왕이 됐다. 

중종반정은 다른 반정과 다르게 신하가 직접 임금을 택해 왕을 바꾼 사건이었다. 중종실록 맨 처음, 반정이 일어나기 전 공신들은 정현왕후(자순왕대비)를 찾아가 "불행하게도 지금 크게 임금이 지켜야할 도리를 잃어 민심이 흩어진 것이 마치 도탄에 떨어진 듯 하다", "대소신료가 모두 종사를 중히 여겨 폐립의 일로 와서 아뢰기를…"이라며 신하들이 진성대군(훗날 중종)을 왕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리는 기록이 있다. 


당연히 반정을 함께 했던 공신들의 힘을 막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중종은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하기에는 어려웠을 터. 중종과 신하들의 갈등도 깊어졌고 공신들은 공신대로 갈등이 심화됐다. 조선의 4대 사화인 기묘사화도 이때 벌어졌다. 기묘사화란 1519년 조광조, 김식 등 신진사림 핵심인물이 죽거나 귀양 간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일화는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은 자리가 '주초위왕(走肖爲王)'이었다는 일화다. 주초위왕…'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씨가 왕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조광조를 곤경에 빠뜨렸고 중종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물론 벌레가 한자를 알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모와 모략이 계속된 그 시절이 낳은 야사 중 하나로 생각된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주초위왕(走肖爲王)'사건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돼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중종 27년 5월 21일 무진 3번째기사. 사진=조선왕조실록/국사편찬위원회

 

■ 괴물이 나타나기 전후의 기록은 어땠나 

중종반정과 기묘사화, 이 두 사건만 봐도 중종이 집권했던 시절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사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의 분위기는 당연히 백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괴담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으로 '괴물'을 목격했다는 기록도 탄생하지 않았나 예상된다. 

사실 다른 왕들의 기록에서도 유사한 내용은 있었다. 하지만 유독 '중종실록'에서 기이한 내용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다는 추측이 된다. 

다음은 괴물이 목격되기 전후 기록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첫 번째 기록의 전날인 5월 8일, 종묘 담장 밖 인가에서 불이 나 담장 안 소나무가 탔다. 그리고 기이한 짐승이 등장한 5월 9일 이 화재 때문에 종묘 안신제를 거행했다고 나타나 있다. 

또한 중종 22년 6월 26일에는 요괴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기록도 있다. 사헌부는 괴물을 봤다는 자들의 죄를 고했으며 홍문관 부제학 박윤경 등은 이 일이 '사헌부' 탓이라고 왕에게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말(馬)같이 생긴 괴물'이 목격됐을 당시, '건방(乾方)·남방(南方)·손방(巽方)에 흰 운기가 가득 퍼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다음날에는 경기 지방에 가뭄이 극심해지고 있다는 영사 정광필의 보고도 있었다. 

당시 조선은 정치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불이 나거나 가뭄이 드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에는 정말 괴물이 존재했을까. 앞서 진위여부는 잠시 미뤄두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기록에 나타난 '괴물'은 처음 보는 짐승을 묘사했거나 '괴물'같던 시대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록 안 언어들을 천천히 곱씹을수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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