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차는 공동체 화합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물론 사람 사는 곳에 빈부차가 어찌 존재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정도다. 극심하면 사회질서 유지 자체를 어렵게 하는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작금 한국사회에 떠돌고 있는 '불평등'이라는 유령은 사람들의 행복감을 떨어뜨리면서 자살, 우울증, 저출산, 일중독 등 셀 수 없는 사회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이 같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문자로 국민적 공분을 낳았다. 계층갈등 심화에 사회 불안은 증폭됐다. 기회 박탈이 문제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는 게 잘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에 따르면 30대 10명 가운데 6명이 자녀 세대의 계층상승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금·흙수저'로 갈리는 '신분사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한국대표부가 2018년 7월에 발간한 '사회이동 촉진방안' 보고서는 우리의 민낯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한국 육체노동자의 자녀 중 40%는 육체노동자가 됐고, 4명 중 1명만 관리자가 됐다. 이에 반해 관리자의 자녀는 둘 중 한 명이 관리자가 됐다. 한국은 소득분포 하위 10%에 속한 가구가 평균소득 가구로 이동하는데 5세대가 걸려 OECD 평균(4.5세대)보다 긴 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21세기판 '신분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실정이 이러하기에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세상이 갈라졌다고 한탄한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결정되는 '세습 사회'가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사라지고 있다.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되는 교육 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면서 균등한 기회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세습된 부와 권력에 의해 과두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한국이야말로 가장 대표적 세습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2016년 현재 한국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상위 1%의 소득은 약 12.3%로 증가했다. 상위 10퍼센트는 약 44.8%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높은 비율이다. '20대 80의 사회'는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이제 '1대 99의 사회'가 출현했다.

이젠 그 누구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됐는데, 이걸 단순히 "너만 잘하면 돼" 또는 "이건 다 사회 탓이야"라고 말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무시한 채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행태는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을 절대 막지 못할 테고, 시대의 흐름과 구성원들의 획일적 선택 문제를 도외시한 채 집단적 해결에만 몰두하면 그 어떤 변화도 이루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갇힐 것이다.

■'계층 간 이동 사다리' 복원 시급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궤도 수정이 시급하다.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빈곤 노인층은 늘면서 2분기 하위 20% 가구 소득은 같은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폭으로 감소한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 취업자 수는 증가하고 임금도 많이 받게 되면서 고소득 가구 소득은 5배 넘게 최대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러니 한국인의 '삶의 만족' 수준은 하위권이다. 가장 빠른 물질적 성공을 이룬 나라가 심리적 불행감에 직면했다는 역설적 현실이 바로 한국의 비극적 자화상이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불평등이다. 기존의 성장·소득 중심 양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포용적이고 복원력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질 중심 다차원적 모델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저축하면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세상사엔 순서가 있다. 개인사만 보아도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 무거운 일과 가벼운 일 등이 있게 마련이다. 훗날 명나라 영락제가 된 연왕(燕王)이 황위(皇位)를 찬탈한 뒤 그에게 즉위의 조(詔)를 기초하도록 명하자 붓을 땅에 내던지며 거부하다 극형을 당할 정도로 올곧았던 방효유의 국리민복을 위한 경책의 말은 계속된다.

"산업을 장려하고 잘 조정해 고르게 분배하며, 교육을 면밀하게 실행해 백성으로 배우지 못하게 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制其産使無不均 詳其敎使無不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