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통한 혁신성장의 사례로 제시한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제한) 완화법안이 입법의 첫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동안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등 주요 경제정책에 맹공을 퍼붓던 야당이 모처럼만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던 법안이었던만큼 전광석화(電光石火)·일사천리(一瀉千里)로 통과될 것 같던 당초 기대와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은산분리 완화라는 큰 틀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처럼 세부 규정을 놓고서 양측의 이견이 엇갈린 것이다.

지난 2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소위에 참석한 여·야 위원들은 모두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를 기존 10%(의결권 행사시 4%)에서 늘리는 것에는 원론적인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지분보유 한도를 풀어줄 산업자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지분보유한도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며 논전을 펼쳤다.

먼저 정부(금융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은 '재벌의 사금고화'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규제완화대상에서 자산 10조원 이상의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은 제외하되 정보통신기술(ICT)을 주력으로 할 경우(자본비율 50% 이상)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는 34% 수준으로 상향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ICT 주력 여부 판단지표가 통계청의 고시 기준인 표준산업분류표상 정보통신업에 따라서 결정된다면 현재 이를 충족하는 몇몇 기업에 대한 사실상 특혜라며 반대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의 지시로 변경이 가능한 고시로 기준을 설정하면 정권의 의도에 따라 대주주 적격요건이 바뀌면서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는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아울러 산업자본 지분보유한도도 50%수준까지 끌어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견은 여·야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당내에서도 산업자본 지분 보유 한도를 25%까지만 풀자는 의원도 있고 인터넷 은행에 한한 은산분리 완화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던 여당 의원 중 일부는 대통령발 정책 드라이브에 일단은 수긍하는 모양새지만 금융소비자 피해예방 등 세부 내용을 더 꼼꼼히 살펴보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몸은 야당이지만 현 정부의 주요 정책에 지지를 보냈던 정의당은 현 정부가 지지층을 배신했다며 은산분리 완화에 완강한 저항모드이다.

잇따라 나온 나쁜 경제성적표때문에 정부·여당으로선 하루 한시가 급하겠지만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융산업 규제 완화인 만큼 졸속적(拙速的)인 법안 통과보다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혁신의 성과는 최대화하며 부정적인 효과는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