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내의석을 가진 대부분의 정당이 전당대회를 통한 당대표 선출 등을 통한 정당 지배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여당은 복잡한 경선절차를 거치면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고, 제 1야당은 난파된 배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하고 비대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상체제로 당을 운영하면서 환골탈태를 다짐하고 있다. 또한 제 3당과 제 4당도 전당대회를 통한 새로운 정당지배구조를 세워나가고 있다.

모름지기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헌법에서는 정당설립의 자유 보장,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조직의 민주성 및 위헌정당해산절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필요한 조직, 국가의 보호 및 정치자금의 국고보조 등 정당에 대한 다수의 규정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헌법의 태도는 정당이 비록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적어도 헌법상 보장되는 기관임을 밝히는 것이다. 나아가 권위주의체제의 일당독재를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적 다원성이 정당제도를 통하여 반영될 수 있도록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다.

정당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이 정당의 독점적 지위나 권한일 수는 없으나, 국민여론형성의 매개체로서 정당이 가장 주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또한 정당의 설립·활동 및 해산에 이르기까지 헌법과 법률을 통하여 광범위한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정당은 국민과 국가의 중개자로서 정치적 통로의 기능을 수행하여 주체적·능동적으로 국민의 다원적 정치의사를 유도·통합 함으로써 국가정책의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당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당의 자유로운 지위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정당의 자유는 민주정치의 전제인 자유롭고 공개적인 정치적 의사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그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이 처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특별히 정당을 보호하는 입법의 취지와 정신에 맞게 과연 우리 정당은 건전하고 건강하게 잘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군사정부가 만든 군대조직 운영하듯 하는 정당, 또 선거를 위해 급조한 정당, 정치지도자의 사랑방으로 운영한 정당, 공천장사를 위한 목적 뿐인 정당, 정당 간판만 있는 그림자 정당, 이념도 없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 등 법이 정하는 민주적 정당과는 거리가 먼 하 많은 행태의 정당이 한국정당사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정당사에서 여당은 제1공화국의 자유당, 제2공화국의 민주당, 제3·4공화국의 민주공화당, 제5공화국의 민주정의당, 제6공화국의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명멸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정통야당인 민주당도 통합과 분열을 거듭한 끝에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으로 변모했다. 한편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바른정당을 창당하였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탈한 세력은 국민의 당을 창당하였다. 최근에 와서는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었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바른미래당으로 통합하면서 이에 이탈한 세력은 민주평화당으로 창당되었다.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의 흐름에 따른 변용보다는 정략적인 정당간의 이합집산현상은 정치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정당 간의 비정상적인 이합집산현상은 오늘 날 비교헌법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심각한 상태이며, 그것은 헌법이론상으로도 규명이 불가능한 기형적 모습이다.

오늘과 같은 정당국가적 현대민주주의사회에서는 정당없이는 민주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당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당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그토록 중요하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절대적 기능을 하는 제도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특별히 보호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이 그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의 후퇴이며,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원활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많은 정치퇴행적, 반민주적 후유증을 만들어 내는 무덤이 되고 만다.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의 운영과 활동이 법에서 정한 정당의 목적에 따라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반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어 친정당적 국민정서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정당의 존재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존재하는 정치결사체이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정책을 통한 치열한 이념논쟁, 가치논쟁을 통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우뚝 서야 한다. 별 의도도 목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정부예산이나 축내면서 법이 보장한 보호만 받으면서 실질적으로는 휴면정당으로 존재한다면 그 정당은 존재의의도 이유도 없는 집단이다.

둘째, 정당 간의 정책대결과 정책연합을 위한 유연함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그냥 ‘죽어도 고’ 식으로 가는 정당은 희망이 없다. 정당내부에서의 토론의 장을 통하여 현안에 대한 끝없는 토론의 장이 펼쳐지며 공부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정책은 없고 정무(?)만 있는 정당은 곧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정당이다. 정당 간에 구체적 정책을 놓고 때로는 대결을 마다하지 않으나, 때로는 좋은 정책에 대해 연대 또는 연합하면서 정당은 발전하는 것이다. 또한 정당 간에 치열하게 다투다 보면 실력의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셋째, 정당지배구조의 민주화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통상 대기업지배구조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다. 재벌 오너의 횡포와 가진 것 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행사하며 회사경영권을 쥐고 있는 것에 대해 심하게 질책을 한다. 옳은 말씀이다. 문제는 정당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정당은 공적 정치결사체이다. 법이 그 후견적 기능을 하면서 정당을 보호한다. 결코 정당은 사조직도 아니요 친목 동아리도 아니다. 정부예산을 지원받으며 정당을 운영한다. 그런데 공적 정치결사체인 정당은 껍데기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비선조직에 의해 정당이 요동친다면 이건 큰 일이다. 공당이 사당화되는 조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대표나 원내대표를 뽑을 때 계량적 수의 논리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파워에 의해 승자가 탄생한다. 계파나 사조직이 공조직인 정당을 좌지우지 한다면 이거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쫓아낸다는 그레샴의 법칙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정당지배구조의 민주화·투명화는 정치권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민주적 질서구축에 순기능을 한다. 정당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의 권력분산과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착이 절실하다.

넷째, 정당은 후계세대를 키우는 정치아카데미 역할을 다해야 한다. 후진양성에 가장 인색한 영역이 정치권이라고들 한다. 정당이 그러한 후진양성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정치권의 세대 간, 지역 간, 직역(전문성) 간의 갈등과 분열을 불식시키기 위한 정치교육을 정당구조 안에서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정당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통한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목표와 목적, 교육과정을 설정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는 장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중앙집권적 정당권력을 지방분권적·지역균형적 관점에서 분산시켜야 한다. 중앙당의 비대화는 결국 정당의 권력독점과 집중, 그리고 정당권력의 부패와 동맥경화현상으로 인해 정당의 단명을 초래케 한다.

정당은 기업이나 사회의 다양한 단체나 조직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 정당 내부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 권력의 중앙집중을 방지하고 권력분산과 지역균형을 통한 정당민주주의가 활착할 때 정치권은 물론 나라의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법치주의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정당이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고, 정당과 정치권이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며 국민과 정당이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합창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정용상 한국법학교수회장/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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