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거나 선거철이 되면 각종 구호가 난무한다. 또한 위기의 상황에서 국론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도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단문의 구호가 흔히 쓰인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구호로는 증산‧수출‧건설, 경제개발, 잘 살아 보세, 조국근대화, 산업화, 중화학공업 육성, 산림녹화, 자주국방, 녹색혁명, 정의사회, 사회정화, 북방정책,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세계화, 대중경제, 동서화합, 사람이 먼저다, 지역균형, 한반도대운하, 저녁이 있는 삶 등 꽤나 가슴을 울리는 슬로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의 정책방향을 홍보하는 슬로건이 그 명칭을 부르는 사람도 따라 하는 사람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현이어서 그러한 슬로건을 소재로 한 개그가 생겨나기도 하곤 했다.

이전 정부의 창조경제, 지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의 내용은 무얼 의미하는지 애매모호하며, 정부 담당자가 그걸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듣는 시민은 이해를 할 수 없어 더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축약된 용어를 내세우는데도 그 진의가 무엇인지 금방 이해할 수도 없는 선문답형 구호이어야 할까? 그저 답답할 뿐이다. 아마도 만든 자가 그 깊은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단어의 선택이 잘못되었거나 무슨 이유이건 있겠으나, 근원적으로는 그 슬로건이 암시하려는 진의를 지도자가 이해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슬로건이 안고 있는 성과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다.

국리민복을 위한 슬로건이라면 국민이 알아듣기 쉽고, 실천할 수 있는 구호, 시간이 흐르면 달성될듯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분열과 갈등을 잠재우고 이웃과의 소통과 국민대통합의 메시지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를 진두지휘하는 정부 또는 정치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그들의 솔선수범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개혁적 행보는 작년 5월 대통령선거 다음 날 급히 정부가 출범하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1년이 지나고도 성과는 커녕 퇴보만 거듭하며 국민적 신뢰를 잃어 가는 모습에 걱정이 앞선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배를 띄운 물은 계속 그 배를 띄울 것인지 아니면 엎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인내의 임계점에 다다르면 그 물은 배를 뒤집어엎어 버린다. 선장의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배가 잘 가려면 선장의 항해기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기관사, 항해사, 갑판원 등 모든 선원이 제 역할을 충실히 다 하되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고 통섭하며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그 공유된 정보를 잘 분석‧평가하여 최적의 항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바탕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순항을 위해서는 선박 내적인 문제도 있지만 외적인 문제 즉 태풍이나 해일, 기상정보 등 온갖 내외부적 요소를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단순히 선박 내의 인적 통합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적시설 외에도 물적 장비나 시설, 즉 각종 운항장비나 시설‧비품‧용구‧자원 등이 잘 갖추어져서 소위 감항능력이 완벽해야만 순항이 가능하다. 하물며 정부운영이야 오죽하겠는가?

정부를 운영함에는 거시정책과 미시정책, 즉 정책의 우선순위와 장단기성의 특징을 잘 검토하여 로드 맵을 작성하고 그 집행을 위한 구체적 대비를 해야 한다.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는데 돈만 쏟아 부으면 되는 것은 아니듯이 무조건 국가예산만 쏟아 부으려 든다면 그 사업은 실패한다. 적재적소, 적기에 적절히 투입하되 반드시 피드 백 절차가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이 국민적 공감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없이는 그 정책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도자는 통합의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요즈음 정치지도자들이 TV화면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내용을 보면 참 딱하기 그지없다. 특정지지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필자는 어느 쪽인지 모르나 늘 스스로는 소외된 섭섭한 기분이다. 지도자는 어느 정파소속이건, 어느 지역이나 직역출신이건 간에 국민 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함은 필자가 너무 모난 성격이기 때문일까?

왜 저 목소리가 내게 신뢰를 주지 못하며 공허한 울림일까? 필자 스스로 공의나 공익에 익숙한(?) 편인데도 왜 저 내용이 내 마음에 울림이 없을까? 살기등등한 표독스런 모습과 음성으로 오로지 상대 정파를 공격만 하는듯한 모습에 실망만 거듭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이 필자만의 생각이길 바랄 뿐이다. 절대다수의 국민적 공감을 얻는다면 필자는 성격상 또 그 길을 따를 것이다.

대한민국호는 쉬이 침몰하거나 좌초할 만큼 허약하지 않음을 믿는다. 그러나 중간기착지에 정박한 대한민국호가 기력을 잃어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어 쉬어가야 하는 경우라면 이건 큰일이다. 역동적이고 활력 넘치는 대한민국이 시름시름 앓는 외피뿐인 형해화된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정책의 실험은 안된다. 국민이 모르모트가 되면 안된다. 완벽한 정책을 가지고 나와야지, 되면 다행이고 안되어도 그만이라는 식의 정책은 내어 놓아서는 안된다. 심사숙고하여 내어 놓아야 한다. 심사숙고과정이 깜깜한 밤중에 어두운 골방에서 혼자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어서도 안되고, 대중선동적 인민재판식이어서도 안된다. 정책결정과정이 적법절차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와서 탈원전정책이나 대입정책이나 여기저기서 공론화위원회라는 것을 운영하는 것을 봤는데, 이게 직접민주주의의 축소판이라나 아니면 국민여론 수렴을 위한 과정이라나 뭔가 이유를 늘어놓는데 참 실망스럽다. 주무부처나 관청이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듯한 인상이 강하다. 정치건 정책이건 책임을 지는 모습이 중요하다. 누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떠넘기기식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구호만 무성하되 그 구호조차도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안되는 저급한 구호정치는 이제 그만하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며 직접민주정치니 여론수렴을 위한 장치니 하면서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정치는 그만하자. 출처도 근거도 명확하지 않으며 신빙성도 없는 통계를 제시하면서 상대적 다수의 지지만 얻으면 그것이 국민의 여론이고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포장하여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홍보하며 완력으로 밀어 붙이는 패권정치는 그만 해야 한다.

최근의 언론매체에서는 정부의 주무부처 장관이 통 안 보인다. 그들은 어디에 숨어서 있을까? 왜 그들은 국민에게 열심히 정책을 홍보하고 설득하며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오해를 불식시키며 해명하려 들지 않을까? 가끔 비치는 장관들조차도 어물어물 정책설명을 하다가도 곧바로 청와대 의견과 다르다는 보도와 함께 사실이 와전되었다며 해명하는 일이 더러 있다. 요즈음은 장관은 없고 수석만 있다는 저잣거리의 이야기는 적대적 정파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BH공화국이라는 비아냥 또한 반대정파가 만들어 낸 가십거리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엄숙히 깨달아야 한다.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은 그르칠 수 없는 진리이다.

20여년전 검사출신 변호사가 검복을 벗고 변호사로 출발하면서 검사시절을 회고한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는 책을 출간한 일이 있다. 그 책의 제목은 정의롭게 열심히 수사를 하는데 눈치없이 너무 나간다는 상관의 말을 은유화 한 내용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지금 정부는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며 성과도 없는 정책이니 브레이크를 밟으라는 국민일각의 충고를 무시하고 엑슬레이터를 끝까지 밟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자동차가 가속이 붙어 곧 나타날 급커브의 낭떠러지에서 어떻게 될지 염려가 크다.

부디 남북관계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남통합과 남북통합 더 나아가 동북아평화와 세계 공존공영의 대질서 속에서 모나지 않게 동반자적 지위를 잘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소득주도성장정책도 궁극적으로는 취업의 문을 넓히고 자영업자‧중소기업가 등 상대적인 경제생태계에서의 사회적 약자에게 삶의 질이 향상되고 경제적 이익을 향유케 하고, 멀게는 양극화가 해소되는 출발점이 되고 경제성장판이 더욱 강고해 지는 근원이 되는 결과를 가져 오길 소망한다. 에너지정책도 불쏘시개처럼 훅 타버리면 그만인듯한 정책적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백년대계의 원려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여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원전강국으로 세계에너지 권력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고뇌가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국가정책은 국제적 대세와 장기적 역사성과 현실적 효용성을 조합한 현답을 찾아 나아가기를 희망하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대통합적 정책이 되길 기대한다. <정용상 한국법학교수회장/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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