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18>

교통에 관한 한 서울의 교통사정이 베이징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다다른 상황이고 보니 과거 도로정책을 담당했던 책임자로서 마음이 초조해진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순환고속도로를 가지고 있다. 도시구조가 중심부에서 사방으로 바퀴살처럼 퍼져나가는 이른바 방사형 도로망을 가진 도시라면 당연히 순환도로망이 구축돼야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서울은 순환도로가 건설되기에 안성맞춤인 구조이다. 현재내부순환도로가 있다고는 하지만 강북 일부 지역에만 효과가 있어 미흡하다.

하루가 다르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수도권의 교통사정을 생각한다면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줄 순환고속도로가 시급하다. 1988년 공사에 들어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약25Km를 벨트 모양으로 엮는 도로이다. 지금 이용 중인 구리-판교-평촌-부천-일산을 연결하는91Km의 도로가 8차로이고 일산-의정부-퇴계원 간 36Km의 8차로 구간중 28Km는 2006년 6월 30일 개통을 하였고 나머지 사패산구간 터널을 포함한 8Km 구간이 개통되는 2008년에는 명실상부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완성될 것이다.

맨 처음 이 도로를 구성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세계은행의 권유 때문이었다. 서울시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로와 철도를 망라한 실사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토대로 개선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건설교통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조사가 이루어져 순환고속도로망 건설이라는 안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일산에서 퇴계원까지의 36Km 구간은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사실 이 구간은 경기 북부의 위성도시(고양. 양주.의정부.남양주) 들의 원활한 소통을 돕고 상호 연계성을 높여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의정부를 중심으로 한 동부간선도로, 국도 39호선과 43호선의 극심한 교통난의 해소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환경 피해를 줄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책 당국은 5년 동안의
실시설계와 공청회, 환경영향평가협의 등의 과정을 거쳐 사패산을 터널로 통과하는 노선으로 최종 확정했다. 그런데 북한산국립공원의 자연환경과 사찰의 수행환경이 훼손된다는 반대에 부딪쳐 200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은후 2003년 12월 말에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의 설계노선에 따르면 북한산국립공원의 일부만이 훼손되지만 북한산국립공원 외곽으로 길을 낼 경우, 북한산국립공원이 많게는 6.5배까지 훼손되고 주택밀집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그런데도 환경단체들이 사패산에 터널을 뚫는 안에 반대한 것은 다른 곳도 아니고 국립공원에 터널을 만드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이런생각을 십분 존중해서 국립공원을 우회해서 의정부 외곽을 지나게끔 노선을 바꾸면 북한산의 훼손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로의 효용성과 기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사패산 터널을 뚫는 것보다 1.6배 더 많은 산림이 훼손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최선의 방법은 사패산 터널을 뚫는 것이었다.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웰빙시대’ 인 요즘엔 편리함과 경제적 이익을 내세운 개발 우선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 과 ‘보전’이라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에서 사패산 터널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행중인 국책사업을 중단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손실과 갈등을 부른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업착수 이전에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 국책사업은 중단없이 추진되어야한다.

또 시민들과 환경단체, 종교계 등의 노선반대 주장의 타당성과 수용 가능성,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눈치 보느라 시간을 지체하면 할수록 손실과 갈등은 깊어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성장위주의 가치관에서 역사와 문화적 환경과 같은 무형적 가치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하고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이룰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적배려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거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제2의 수도권 순환고속도로도 하루빨리 건설되어야 한다. 얼마 전 인천-시화-오산-양평-동두천-파주-인천을 연결하는 약 250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보도되었는데 이안은 순환고속도로의 기능을 하기엔 전체 둘레가 너무 크다. 외곽을 달리다가 시내로 진입하기가 쉬워야 순환의 개념이 성립된다. 그런데 이 노선은 순환 개념보다 지역간 도로의 개념이 훨씬 강하다.

제2순환고속도로를 건설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은데 굳이 한꺼번에 건설할 필요는 없다.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노선은 인천-시화-화성-오산을 연결하는 구간이다. 이 노선은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과천-의왕-봉담 간 유료도로 등을 가로지르면서 시화공단, 남동공단, 송도신도시, 영종도까지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산업도로가 될 것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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