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19>

도로가 가지는 경쟁력은 길에 오가는 자동차들이 많을수록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차가 몇 대 오가지 않는 한적한 도로보다 차들로 북적이는 도로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날로 늘어가는 자동차로 도로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정체가 심해지자 지하철이나 전철이 등장해 그 짐을 덜게 됐다. 지금 지하철이 운행되는 도시만도 서울, 인천,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 여섯 곳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수한 교통체계와 교통문화를 가진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2001년부터 2002년R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 재임하면서 필자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마치 클로즈업 하듯 자세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관심은 단연 교통문제였다.

부산에서 자동차를 운전해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게 ‘왜 이렇게 돈 내는 곳이 많은가’ 하는 것이다. 통행료를 내고 조금 가다보면 얼마 지나지않아 또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려 돈을 꺼내야 할 일이 생긴다.

부산엔 정말 유료도로가 많다. 만덕터널, 구덕터널, 수정산터널, 황령산터널, 백양산터널,광안대교,동서고속도로,도시고속도로 등 도시 곳곳에 민간자본으로 건설된 유료도로가 깔려있다 도심의 크기가 부산의 세 배나 되는 서울도 유료도로가 남산 1,3호 터널로 단 두 군데밖에 없는 것과 비교하면 부산시민들은 도로를 이용하는 대가를 크게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부산시민들은 별 불만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 슬쩍 물어봐도 목소리 높여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 이런 논리가 가능할 것 같다. 부산은 도시구조상 산지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곳에 터널이 뚫려 공간적으로 엄청난 단축이 이루어졌다. 터널이 없던 시절,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으면서 뱅뱅 돌아다니느라 시간까지 많이 걸렸던 시절에 비하면 빨라지고 편리해졌으니 ‘충분히 요금을 지불할 용의(willingness to pay)'가 있는 것이다.

부산시민들은 왜 많은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행정 당국에서 건설하면 돈을 안 내고 도로를 다닐 수 있는데 왜 민자사업을 유치해서 통행료를 내게 하느냐고 따져 묻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히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런 불만을 터뜨릴 뿐, 부산시민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좋아진 도로 여건을 고마워하며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부산은 지하철 수요가 예상보다 적은 게 특징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드는 추세이다. 2005년 9월 현재 부산의 지하철 노선은 노포-신평간 1호선 32.5km, 호포-장산간 2호선39,1km 모두71.6km이다. 부산은 잘 알다시피 지형적으로 기다란 모양의 선형도시다. 이런 이유로 지하철 2개 노선이 완공되면 최소한 20%의 수송 분담 역할을 맡게 될 거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2003년 말 기준으로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은 12.6%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것도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현재 대저-수영. 미남-안평간 31km의 3호선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송분담률이 획기적으로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서울의 수송분담률이 35%나 되는 것과 비교된다. 물론 서울은 지하철망이 287Km로 부산보다 훨씬 길다. 그런데 도시 규모도 부산보다 세 배나 큰 것도 함께 감안 해야 한다. 그만큼 부산시민들은 도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택시의 수송분담률이 15%로 전국 최고라는 데서도 이 같은 특성은 잘 나타난다. 서울의 택시 수송분담률은 절반수준인7.5%. 그렇다면 부산 사람들은 모두 부자라서 택시를 많이 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마도 주택들이 산지에 많이 분포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한참을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하니까 택시의 이용빈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부산의 교통정책 역시 이같이 독특한 도시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부산도 서울처럼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4년 말에 필자는 ‘부산시 교통개선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대중교통체계 개편에는 지하철만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말고 ‘지하철+버스’의 개념을 도입하자고 주장하였다.

지하철과 버스가 각각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하철과 경쟁하는 간선버스는 폐지하고 지하철역과 연계되는 지선버스를 무료로 도입하여 지하철 분담률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도 편해지고 지하철 운용당국인 부산교통공단의 만성적자도 해소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도시정책이나 교통정책이 효율성이라는 결실을 맺으려면 획일화되고 일률적인 정책보다는 그곳의 형편에 들어맞는 이른바 ‘맞춤형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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